
이날 시상식에서 심산 문덕수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제3회 문덕수문학상에는 시집 『사물들, 그 눈과 귀』로 고창수 시인이, 창간 48주년을 맞는 국내 전통 시 전문지 시문학의 문학정신을 함양시켜온 제36회 시문학상에는 시집 『B자 낙인』으로 송시월 시인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어 "우리가 살아온 시대 및 사회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리얼리즘 문학이 흥왕할 수밖에 없었던 문학적 환경 가운데 문덕수의 시와 논리가 있었기에 모더니즘 문학이 공여하는 균형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터"라며 "그런 점에서 이 상은 단순히 이름 있는 문인의 성가(聲價)에 기대어 있기보다 문학사적 가치에 더 무게중심이 있으며, 그러기에 이제 세 번째에 이른 이 상의 의의가 크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심사에서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올라온 시집은 모두 다섯 권이었는데, 심사위원들은 이 시집들을 공들여 읽고 오랜 논의 끝에 고창수 시집 『사물들, 그 눈과 귀』를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며 "수상자 고창수 시인은 시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외무부 공직과 해외 주재 대사를 역임한 경력이 있으며, 이 여러 체험적 자원을 시작(詩作)으로 이끌며 '형이상학적 속삭임의 낭랑한 음악'을 들려준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이어 "이번 제3회 문덕수문학상 수상자 고창수 시인은 초기 강한 모더니즘적 색체에서 출발하여 시와 인접예술의 상관성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 폭이 넓은 시인이다. 이와 같은 시적 성향은, 문덕수문학상 수상의 적합성을 현저히 높여주는 측면이 있다"며 "그런가 하면 시적 대상이 내면에 숨어 있는 미묘한 움직임을 감각하고, 이를 새로운 표현의 방식으로 도출하는 모더니즘 시의 기량을 보여준다. 상을 받을 만한 시인이 수상자가 된 경우"라고 밝혔다.


고 시인은 이어 "또한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시 작품 못지않게 사회적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을 향하여 시를 천착하며 창작하는 행위도, 마치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듯, 그 의미가 크다는 생각도 가져보았다"며 "오늘 수상이 그간 저의 시적 정체 상태를 일깨워 좀 더 성실하게 시작활동에 정진하도록 독려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알고 시작 활동에 더욱 매진코자 한다"고 덧붙였다.
고창수 시인은 1934년 함남 흥남 출생으로 1965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1963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석사 및 박사, 1965년~1996년 외무부 본부, 주이디오피아대사, 주시애틀총영사, 국제문화협력대사, 주파키스탄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집으로 『파편 줍는 노래』(1976), 『사물들, 그 눈과 귀』(2013) 등이 있으며, 고창수 외국어 번역시집: 『Seattle Poems』(1993, 미국 Poetry Around 출판사), 『Sound of Silence』(2000 미국 Homa &Sekey Books), 스페인어 번역 시집(2009, 멕시코 Ermitano 출판사) 등을 출간하였고, 그동안 <한국문학번역상>(1980, 코리아 타임즈), <번역문학상>(2006,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파키스탄 Bolan 국제문화공로상, 시 부문>(1996) 의 수상경력이 있다.


이어 "올해 시문학상 수상작으로는 송시월의 시집 『B자 낙인』이 선정되었다"며 "예심을 통과하여 올라온 5권의 시집 가운데 이 작품을 선정한 것은 이 시인의 시가 '시간과 공간, 존재와 부재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갖가지 은폐된 얼굴을 드러내는' 시적 기량을 근거한다"고 말했다.
또 "이 또한 문덕수 시인의 문학세계 계승하는 면모가 약여하여, 올해의 수상작은 그 내면적 문학의 성격에 있어 문덕수 문학의 눈으로 볼 때 매우 기꺼운 제목을 보여 준다"며 "송시월의 시는 한국문학에 익숙한 전통적 정서를 매우 간단히 뛰어 넘는다. 그것이 현대성의 반영이든 시인이 가진 독특한 성향이든, 그처럼 새로운 방식의 시적 이미지와 낯선 유형의 언어 용법이 우리에게 값있게 시를 수용하는 체험을 선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특히 모더니즘 시의 시각으로는 크게 상찬할 만한 작법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송시월 시인은 이날 수상소감에서 "저는 달을 훔쳐서 타임머신처럼 타고 다녔던 절도범"이라며 "17세기 후반 러시아에서는 절도범에게 키릴문자 대문자인 'B'를 주홍글씨처럼 찍었다고 하는데, 저는 훔친 달을 타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전제정에 반대하여 농노제 폐지를 외치다가 사형당하거나 유형장으로 끌려가는 혼란한 19세기 초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송 시인은 이어 "달을 궤도 이탈시킨 죄목 때문에 언어가 저에게 'B자 낙인'을 찍어 준 것"이라며 "이 주홍글씨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해서 늘 주변에만 웅크리고 앉아 사고칠거리나 찾고 있는 이 돌연변이에게 이렇게 귀한 상을 주시다니요! '시는 역설의 미학이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시문학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송시월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12시간의 성장』, 『B자 낙인』을 상재하였고, 제1회 <푸른시학상>을 수상 하였으며, 현재 계간 『시향』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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