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지난 12월 5일 밤,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은 문학의 숨결로 깊고 따뜻했다. 계간 <문학에스프리>(시인·발행인·대표 박세희 )가 주관한 2025년 문학상·작가상·작품상·신인상 시상식은 한 해의 문학적 성취를 돌아보는 현장이자, 한국문학의 미래를 다시 정초(定礎)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올해 ‘에스프리문학상’의 영예는 장편소설 <표해록(漂海錄)>을 집필한 김호운 소설가에게 돌아갔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문단 안팎에서 꾸준히 창작과 시대적 발언을 이어온 그는, "문학적 완성도와 역사적 탐사 정신을 겸비한 보기 드문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무대 중앙에 섰다.

'148일 표류의 기록'을 되살린 장대한 서사… 허형만 심사위원장 "한국 서사문학의 한 봉우리를 넘어섰다"
올해 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허형만 문학평론가는 <표해록>을 "역사적 기록 위에 새로 쌓아 올린 장대한 인간학적 서사"라며 "한국적 서사 전통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밀도와 깊이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허 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표해록>은 조선 성종 시기 청백리 최부와 배에 탄 43명의 일행이 제주 해역에서 난파되고 중국 절강성에 표착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148일의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라며 "김호운 작가는 방대한 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광활한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 속에서 드러난 역사·지리·문화적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무엇보다 표류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 공동체의 윤리, 청백리 최부의 리더십은 오늘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고 평가했다.
허 위원장은 또한 이 작품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문학적 숭고"를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허 위원장은 "포효하는 파도 앞에서 숙명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아들이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장엄한 문체와 현장감으로 그려냈다"며 "미국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호운의 <표해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성취다"라고 말했다.
허형만 위원장은 이어 <표해록>을 "2020년대 한국문학이 도달한 서사적 고지"라고 평가하며, "이 작품이 <문학에스프리> 겨울호에 이어 봄호까지 연재된 것은 그 가치를 다시 환기하는 중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작가는 바다와 풍랑, 표류라는 극한의 조건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윤리를 새로운 감각으로 복원해냈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특히 이 작품을 '한국형 영웅서사'로 언급하며 "최부라는 한 인물이 생사의 경계에서 보여준 리더십,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를 지켜낸 동행의 윤리는 오늘 우리 사회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다"라며 "인간의 고통과 회생, 그리고 언어의 숭고함을 동시에 담아낸 보기 드문 성취다"라고 덧붙였다.
허 심사위원장은 또 <표해록>이 단지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21세기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생존·연대·성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학이 시대를 비추는 '등불'이라면, 이 작품은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켜진 등불"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단의 공통된 평가였다.

김호운 소설가는 창작 경위에 대해서 "고통의 항해를 다시 건너며, 나는 인간을 다시 배웠다"고 밝혔다.
수상 직후 열린 간단한 인터뷰에서 김호운 소설가는 <표해록> 집필의 내밀한 배경을 들려줬다.
그는 먼저 최부(崔溥)라는 실존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부는 부패한 시대에 청백리로 남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삶과 언어, 그리고 표류를 견디며 동료들을 끝까지 이끌던 그 ‘낮은 리더십’에 오래 전부터 강하게 끌렸습니다."

김호운 소설가는 집필 과정은 예상보다 길고 고된 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선과 명나라의 해로, 항해기록, 풍속, 지리 자료들을 수백 편 넘게 참고했습니다. 당시의 기후, 조류, 배의 구조까지 확인하면서 ‘바다 위에서 인간이 어떤 감정의 굴곡을 겪는가’를 가장 먼저 체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작품에 깊이 매달린 이유는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고 싶어서'였다.
"표류라는 조건은 인간을 발가벗긴 환경입니다. 고난 앞에서 드러나는 두려움,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서로를 지켜내는 연대…. 최부 일행의 148일을 따라가며, 저 자신도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김 소설가는 집필 내내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으로 '풍랑 속에서 서로의 몸을 묶어 밤을 버티는 장면'을 꼽았다.
"그들은 신분을 잊었습니다. 양반도, 노비도, 행정관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은 ‘동료 인간’이었죠.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꼭 필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상 소감에서 "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그릇"이라며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도 시대의 그늘을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낮은 곳을 향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서, 인간의 기록을 남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단순한 연말 문화행사가 아니라, 한국문학의 지속성과 저력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바다는 여전히 인간의 침묵을 품고 있고, 인간은 여전히 그 바다를 건너며 스스로를 검증한다.
<표해록>이 제시한 이 오래된 질문, "인간은 위기에서 무엇을 지키는가?"
그 물음은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도 그대로 닿는다.
<문학에스프리>는 내년에도 보다 폭넓은 문학인을 발굴하고, 전통과 미래를 잇는 문학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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