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김현옥 시인의 '한낮 야시비'는 맑은 날 잠시 스쳐 내리는 여우비를 부산 사투리 '야시비'로 불러오며, 가을 한낮에만 깃드는 빛의 결과 감정의 숨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한낮 야시비
- 김현옥 시인
야시비가 내리면
여우처럼 꼬리를 내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거리의 파란 테라스를 찾겠어
모든 슬픔의 기원은 블루
동백섬에 앉아
해운대 바다를 보며
부르는 노래
바다의 블루스
야시비 춤춘다
날아오르는 클림트 키스처럼
날개를 달고
내리는 금색비
잠자리 한 쌍의 날개 위로
내려앉는 투명한 사랑의 야시비
짙은 블루는 커튼을 젖힌다
누구의 것도 아닌 가을 한낮에
꿈꾸듯 야시비 내린다
그대 눈썹 아래로
*야시비 :여우비(맑은 날 잠깐 내리는 비)를 이르는 사투리 표현
이 시에서 야시비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슬픔과 위로가 동시에 내려앉는 금빛의 순간이다. 푸른 바다의 깊은 정서 위로 금색의 비가 겹겹이 스며들며, 사람의 마음속에 조용히 다가오는 한낮의 정서를 시인은 투명한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모든 슬픔의 기원은 블루"라고 말하며 해운대 바다를 불러온다. 슬픔의 색인 '블루'가 바다의 깊이와 맞닿으며, 우울의 정조는 어느새 바다의 블루스로 변주된다.
슬픔이 음악적 리듬을 얻고, 파도가 춤을 추듯 가벼워지는 장면에서 독자는 감정의 이행을 경험한다. "야시비 춤춘다"라는 표현은 슬픔이 정체된 감정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다시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어 시인은 클림트의 명작 '키스'를 불러와 한낮의 야시비를 "금색비"라 명명한다. 푸른 슬픔 위로 내려앉는 황금빛의 대비는 삶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상처 위로 스며드는 미세한 위안, 슬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일상의 결- 그 모든 것을 이 금빛 비가 은유하고 있다. 잠자리의 날개, 투명한 사랑, 커튼을 젖히는 짙은 블루 등 시 속 이미지들은 느슨하게 흐르면서도 서로를 견고히 지탱하며 정서의 유영(遊泳)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 구절 "그대 눈썹 아래로"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다. 비가 풍경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 내리는 비로 장면이 축소되면서도 오히려 감정은 더욱 농밀해진다. 어느 가을 한낮,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에 문득 찾아오는 투명한 위로—그것이 이 시가 전하는 야시비의 본질이다.
■ 작품 감상과 해설 /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
블루에서 골드로 흐르는 감성의 결
김현옥 시인의 언어는 지역성과 세계성이 자연스레 공존한다. '야시비'라는 고향의 사투리는 클림트와 블루스, 해운대의 바다와 런던의 공간감까지 확장되며, 지역의 감정과 세계적 감수성이 한 문장 안에서 어우러지는 미감을 이룬다.
그의 시는 일상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과잉된 장식 없이 정제된 정서를 구현하고, 감정의 깊이를 색채와 이미지로 응축해내는 특징을 가진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위로 희미한 황금빛의 위로를 얹어 놓는 그의 시적 태도는, 독자에게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건넨다.
■ 김현옥 시인김현옥 시인은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교육 현장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다져 왔다.
이후 영국 런던에서 20여 년을 생활하며 multicultural 환경 속에서 언어와 감정의 지평을 넓혔다. 특히 런던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교육자로서, 동시에 한국문화의 전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작가>를 통해 등단한 그는 시집 <시 하나 마음 하나>를 비롯해, 고향 부산의 정서와 영국에서의 삶이 겹쳐지는 특유의 감각으로 일상과 여행, 기억과 사랑의 층위를 차분하고 맑은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시는 삶의 미세한 결을 끌어올려 독자에게 잔잔한 위로와 사유의 여백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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