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평생을 두고 불편한
인연을 맺어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격 빈소를 찾았다.
하지만 이번 조문을 역사적 화해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끝내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할지 관심이 모아졌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영결식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을 한 전 전 대통령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경호관 2명을 대동한 채 빈소에 들어섰으며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 씨를 만나 "내 나이만 많은 줄 알았는데 자식들 나이도 많다"면서 "연세가 많고 하면 다 가게 되어 있다"고 현철 씨 팔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전 전 대통령은 현철 씨는 "건강이 좀 안 좋으시다 들었는데 괜찮으시냐"고 전 전 대통령 안부를 묻자 "나이가 있으니까 왔다갔다 하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자리를 함께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께서는 상당히 장수하실 것"이라고 화답했다.
10여 분간 짧은 조문을 마친 전 전 대통령은 "YS와 역사적 화해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빈소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경호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전 전 대통령 발이 잠깐 묶이기도 했다.
위로와 덕담이 오가는 빈소와 달리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간 악연은 약 35년 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5·17 조치로 상도동 자택에 가택 연금을 당했고, 신군부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하면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어 1983년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선 김 전 대통령은 이듬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고, 1985년에는 신민당을 창당해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하나회 척결을 통해 숙군을 단행했고, 임기 중반인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모두 구속시켰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인 2010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갔을 때 전 전 대통령이 함께 초대받은 것을 알고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라고 면박을 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재헌 씨가 상주 현철 씨 손을 맞잡으며 20년간 쌓였던 앙금이 다소 풀리는 모습이었다. 재헌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전한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뜻을 전했다"며 다만 문민정부에서 고초를 겪은 것과 관련해서는 "그런 말씀은 딱히 없으셨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10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중이다.
김수한 전 의장은 이와 관련해 "원수 관계 등 각진 관계가 하나하나 눈 녹듯이 풀려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재계 인사들 조문도 이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등이 다녀갔다. 메이저리거 출신 박찬호도 빈소에 들러 눈길을 끌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하루 일찍 마치고 귀국해 이날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15대 총선에서 YS에게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YS의 공과 과가 다 있는데, 과를 침소봉대했다"며 "고인의 서거가 여야 간 정국 경색을 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