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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이혜선 시인의 '빈젖 요양원'

예견도 이해도 못하는 '늙음' 앞에서

빈젖 요양원

- 이혜선 시인

장미요양원의 꽃씨할머니
열 명이나 되는 새끼들이 아귀같이 빨아먹었다

새싹 밀어올리느라 젖먹던 힘까지 다 써버린 흰 뿌리,
쭈그러진 껍질만 우주의 절벽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 손으로 누르기만 해도 바스락
그마저 무너져 내리는, 매미허물이다

시든 장미꽃잎에 비 한 줄금 지나가고
따슨 햇살 비낀 오후 한나절

절벽 가에 나란히 앉아 서로서로
지나온 허공 더듬어 보는 껍질들의 시간
말라버린 빈젖만이 앞가슴에 쭈글쭈글,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다
막 돋기 시작하는 아이들 잇바디,
깨물던 그 아픔을 기억할 때만 흐물흐물한 잇몸
드러나도록 웃어보는
빈젖동네, 빈젖요양원

소행성 B-612 어린왕자의 장미원에는
요양병원은 꿈에도 모르는 새 장미꽃만 핀다

시작노트
끝이 없는 동굴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11월 초에 '위드 코로나'가 시작 되면서 일상회복이 조금씩 이루어지려나 기대했는데, 며칠 사이에 감염 확진자 7천명이라는 소식에 세상이 또 한 번 정지하는 것 같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서라고 겨우 가능했던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 면회가 또 비대면으로 바뀌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다.

몇 년 전에 친정 어머니가 99세를 일기로 이승을 하직하셨다.
격동의 한 세기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오신 어머니, 몸이 아플 때도 아들이 있는 부산땅을 한사코 떠나지 않으려고, 딸 셋이 모두 살고 있는 서울은 마다하셨다. 바쁜 아들 며느리 대신 작은 언니가 부산까지 가서 몇 년간 모시다가, 정신을 놓으시는 바람에 결국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정신이 조금 나을 때 어머니를 부축하여 야윈 몸을 씻어드리면서, 새삼스레 어머니의 뼈만 앙상한 팔다리와 빈 젖가슴이 가슴 아팠다.

젖이 모자라도 밥솥에 고이는 밥물밖에는 아기 양식이 없던 시절에 어머니의 젖만이 우리 남매의 생명줄이었다. 그 젖을 먹고 뼈가 굵어지고 키가 자라서는, 저 혼자 잘났다고 두 팔 휘젓고 슬하를 떠나서는, 자나 깨나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잊어버리고 사는 자식들…

더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의 늙고 힘든 몸을, 그 애틋한 기다림을 이해하기는커녕 성가셔하는 젊은이들의 마음가짐이다.
'소행성 B-612'는 독자가 이미 눈치 챘겠지만,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사는 별이다. 그 별에는 어린왕자의 사랑을 믿고 '벌레 잡아 달라', '그늘을 만들어 달라' 투정부리는 젊고 예쁜 장미가 살고 있다. 이렇게 젊고 예쁜 장미꽃들은 자기들이 항상 젊고 예쁠 줄만 알지, 늙음을 예견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외로움을 이해 못하는 소통부재의 사이가 된다. 머지않아 자기 앞에도 다가올 ’빈젖동네‘는 꿈에도 생각 못하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빈젖동네의 어머니들도 한 때는 늙음을 이해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젊고 예쁜 장미꽃이었을 것이다.

체험 없이는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이며 부조리인 이 슬픈 순환 앞에서 우리는 선험적인 깨달음과 핏줄 속에 돌아드는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서로를 안아주어야 하리라.

코로나 19가 조금 힘을 잃으면, 요양병원에 계신 고모님 내외분을 하루빨리 찾아가 따스한 손을 마주 잡아야겠다.


이혜선(李惠仙) 시인
경남 함안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및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1년 『시문학』 추천.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화체육광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 등.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등. 세종우수도서(2016). 윤동주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비평가협회평론상 외 다수.
현재 동국대 외래 교수 역임. '향가시회' 동인. 유튜브 : 이혜선시인 TV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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