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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운 작가, 소설집 '사라예보의 장미' 출간

한 시대를 해석하고 증언하는 첨예한 서사적 도록(圖錄)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이들에게는 집 안과 집 밖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내전으로 희생된 가족들이 아직 바깥에 머물고 있기에 이들에게는 집 안도 집 바깥도 모두 집이다. 현관문을 잠그지 않는 것도 잠그는 걸 잊어버렸다기보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집 현관문에 달려있던, 샤샤의 어머니가 가끔 열어놓기도 한다는 그 자물쇠를 다시 떠올렸다. 그 자물쇠는 현관문이 아니라, 이 집 가족의 마음을 열고 잠그기 위해 달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사라예보의 장미」 중에서)

김호운 소설가의 소설집 『사라예보의 장미』(도서출판 도화 刊)가 출간됐다.

이 책은 김호운 작가의 작품집으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종횡으로 직조되면서 우리 앞에 드리워진 거대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사라예보의 장미』 개개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벌여나가는 서사는 다채로운 인간의 삶을 여실하게 보여주면서 새로운 인간 이해의 구체적이고도 다성적인 차원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재현하는 동시에 인간과 역사와 공동체에 대한 작가 고유의 해석 과정을 자연스럽게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 「사라예보의 장미」는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하된 사라예보의 스산하고 음울한 시공간을 경험적으로 재현한 1인칭 소설이다.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나'는 어둑한 아침에 사라예보의 한 광장에 있는 여행자 안내소에서 민박집을 소개 받고 직원을 따라가면서 건물 외벽 여기저기 나 있는 총탄 자국들을 만나는데, 직원은 빨간 페인트로 메꾸어 놓은 총탄 자국을 이곳에서는 '사라예보의 장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언젠가 보았던, 내전으로 고립된 사라예보의 한 어린이가 그린 탱크 포구에 장미 한 송이 꽂아놓은 그림을 떠올린다. 내가 묵게 된 민박집의 여주인은 두 아들과 남편을 내전으로 잃었고, 큰딸마저 수용소로 끌려가 성폭행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박집 여주인은 언제나 광장에 나가 '영혼 없는 동공'으로 어디론가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런 가여운 어머니를 향한 탄흔을 메꾼 빨간 '사라예보의 장미'보다 더 붉고 진하고 아름다운 샤샤의 눈물어린 미소는 사라예보를 향한 역설적 희망을 잔잔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사라예보의 구체적인 지명을 통해 인간 역사의 비극성에 개입하고 그것을 불가피한 존재 조건으로 수용해낸 수작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배음(背音)으로 삼으면서 인간 이해의 심층을 더욱 예각적으로 보여준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간과 사회가 복잡한 관계망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알면 알수록 혼란스럽고 진실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그것을 정작 알려고 하는 사람은 줄어드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일러 더닝 크루거 효과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명명한다.

번역일을 하면서 이 세상에 속이 흰 맑고 아름다운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나(정화수)와 그의 친구 추현국을 통해 삶의 고비마다 휜색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흰색으로 위장하면 더 무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한 역학으로 무장한 채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비바늘꽃」은 작년에 입적한 승찬 스님의 추모 법회에 참석한 소설가 김진우가 바라보는 송광사 풍경으로 시작된다.

김진우는 승찬 스님과 세 번이나 인터뷰 한 인연을 가졌다.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던 그는 첫 번째 인터뷰 때 평생 자신을 끈질기게 옥죄던 질긴 끈이 심안(心眼)에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두 번째 인터뷰 때는 스님으로부터 '들고 있는 무거운 돌을 자유자재로 내려놓을 수 있는 그 힘'을 발견한다.

세 번째 인터뷰 때는 이야기를 마치고 '나비바늘꽃'을 바라보는데, 나비들의 군무(群舞)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꽃'이었다. '나비바늘꽃' 말이다.

이 소설은 불교적 명제를 단순하게 문학적으로 번안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삶의 이치를 궁구해가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바람이 된 섬」은 정답게 살던 단독주택들이 모두 재건축을 하는데도 사람 사는 '집'을 고집하면서 그야말로 ‘섬’으로 남아버린 어느 집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는 실존적 퇴로가 없는 '섬'에서 살아온 고단한 중년 사내가 거기 있고, 집은 바람이 되어가고, 질긴 섬을 감싸고 있던 희망은 도둑을 맞았다. 스스로 섬이 되어버린 사내의 모습을 통해 한 시대의 주변과 심층을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림자의 그림자」는 여성화자로 설정된 '나'가 만난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전 남편은 사업에 열중하다가 여비서 폭행사건에 휘말려 옥중에 있고, 옛 남자친구는 지리산에서 30년째 신비롭게 은거하고 있다.

그렇게 존재론적으로 극과 극을 이루는 두 사람 사이에 나는 가와바다 야스나리 『설국』을 불러와 결국 자신이 맞서 싸운 것은 존재 자체도 아니고 존재의 그림자도 아니고 그림자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의제인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한 양상을 다루면서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역학을 제기하고 있는 문제적 단편이다.

「미켈란젤로의 돌」은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을 꿈꾸면서 고민 끝에 그녀와 해외여행을 함께 하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피렌체에서 그 유명한 다비드상을 만난 ‘나’는 그 상(像)도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하기 전에는 골목 한쪽에 팽개쳐져 있던 돌덩이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 역시 새로운 부활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면서 이혼한 아내를 제대로 한 번 이해해 볼 작정을 한다. 그러면서 다비드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저 눈빛처럼, 자신에게도 르네상스의 기운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일곱 살」은 동화와도 같은 따뜻함을 담고 있는 불가적 사유의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우리가 본래의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하는 대로 갈등 없이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참모습이라고 고조곤히 말해주는 소설이다.

「우상을 위하여」는 어린 새끼돼지와 함께 읍내 장터에서 노숙하며 살아가는 한 여인에 관한 관찰기이다.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와 일정하게 상호텍스트성을 형성하면서, 이 기괴한 돼지 엄마의 외관과 내관을 따라가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생명 지향의 언어가 은은하게 스며든다.

「틴테레토의 거울」은 대학 전임의 기회를 놓치고 학원 강의로 세월을 이어가는 노경(老境)의 학원 강사를 그린다.

열세 살 어린 아내를 두고 강의를 나올때마다 불안을 느끼는 강사는 학원 주인의 방에서 틴테레토의 복제 유화를 만나는데, 그 그림은 아내의 불륜현장에 들이닥친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노동과 휴식, 이성과 감성, 사랑과 불안 사이의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소시민의 상황을 서양화와의 상호텍스트성으로 치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파란 비닐우산」은 초겨울 추위가 느껴지는 어느 비 내리는 날, 여성화자인 '나'는 가족들이 모두 나간 빈집에서 자신을 닮은 듯한 '신발장 옆에 세워둔 파란 비닐우산'을 발견한다.

그 우산을 들고 결혼 전에 남편과 자주 갔던 커피숍으로 향한 '나'는 오랜만에 남편과의 실존적 동일성을 느낀다. 그러자 파란 비닐우산 위로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석같이 반짝이면서, 아름다운 빗속 풍경과 비닐우산 그리고 부부가 만나 이루어갈 공간의 시공간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공감의 순간이 빗줄기처럼 번져가는 이야기이다.

「봉숭아꽃물」은 봉숭아꽃물을 들이는 남자를 통해 살아 있는 생명의 순수함과 천사와도 같은 사랑의 마음을 탐색하고 있다.

초승달처럼 손톱 끝에 걸린 봉숭아꽃물은 삶의 은총과 지극한 모성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깨달음을 은유하고 있다.

김호운 작가의 소설집 『사라예보의 장미』는 이처럼 한 편 한 편이 음색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고 그것이 한데 모여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형성하고 있다. 열 편의 작품은 물론 권말에 실린 짧은 소설 두 편까지 그 교향악에서 빠지지 않는다.

「개미와 거미」는 서울 변두리 허름한 빌딩 옥탑방에 들어선 거미가 개미 부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족간의 사랑과 연민을 알아가는 알레고리 작품이다.

「헤르타 뮐러의 손수건」은 언제나 넉넉한 가슴과 관심을 보여주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발견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사유와 언어가 따뜻하고 융융하고 심층적인 이 소설집은 한 시대를 해석하고 증언하는 첨예한 서사적 도록으로 읽힌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함께 감동적인 문학적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영화를 비롯한 자본주의 영상미학의 총아들에 의해 현저하게 위세가 꺾인 소설은 이제 인문학적으로 담론 확장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에 있는 셈이다"라며 "여기서 우리는 김호운 소설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 사회의 병폐가 인간을 사물화하는 데 있다는 점을 치열하게 비판하면서 그는 우리를 둘러싼 사물이나 관념의 자명성에 회의를 던지는 중후하고도 확장적 소설을 써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유 평론가는 이어 "그 점에서 김호운은 경계의 탐색을 통해 삶의 복합성을 증언하는 장대한 소설을 꿈꾸는 작가이다"라며 "그러한 경계에서 작가는 아름답고 따뜻하고 쓸쓸한 필치로 삶과 현실을 암시하는 정점의 언어를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다. 이 소설집은 그러한 도정의 첨예한 증좌가 되어주면서, 그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미학적 거장(巨匠)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끔 해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호운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경기일보 논단 '아침을 열면서'에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쓴 칼럼 가운데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작가의 말'로 올린다"며 "장편소설을 포함하여 작품집 30여 권을 펴내면서 나를 붙든 의단이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였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이어 "당장 쓸모 있는 도구가 될 수는 없지만, 문학은 우리에게 우리를 억압하며 사슬로 묶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도록 부추기는 힘을 준다. 이것이 내가 얻은 답이자 내가 작품을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소설집 『사라예보의 장미』가 누구나 편하게 자유로이 쉴 수 있는 그런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호운 작가는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황토(荒土)』(전2권), 『님의 침묵』(전3권), 『스웨덴 숲속에서 온 달라헤스트』, 『표해록(漂海錄)』, 『바이칼, 단군의 태양을 품다』, 『장자의 비밀정원』 등과 소설집 『겨울 선부리』,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부』 등이 있다.

콩트집으로 『궁합이 맞습니다』(전2권), 『바람잡힌 남편』 등과 에세이집 『연꽃, 미소』, 인문학 저서 『소설학림』 등 작품집 30여 권 출간했다.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녹색문학상, 둔촌이집문학상, PEN문학상, 대한민국 예술문화대상, 리더스에세이문학 대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역임했다.

현재 국립한국문학관 자문위원, 산림문학회 고문,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공동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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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인총연합회 제6대 회장에 노수승 시인 취임
(대전=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대전문인총연합회(이하 대전문총)가 제39차 정기총회를 통해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대전문총은 29일 대전 시내 한식당 '바다로'에서 회원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신임 회장 인준을 비롯한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전년도 주요 업무 보고와 정관 개정, 2026년도 사업 계획 발표도 함께 진행됐다. 대전문총은 1990년 창립 이래 회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독특한 선출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문단 원로와 고문들로 구성된 회장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를 엄선해 추대하고, 이를 총회에서 회원들이 인준하는 이른바 '교황 선출 방식'이다. 이날 최송석 고문의 회장 인준 경과보고에 따라 참석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인준하며, 대전문총 특유의 화합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 6년간 대전문총을 이끌어온 제5대 김명순 회장은 퇴임사를 통해 "열정을 바쳤던 회장직을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문학인의 자리로 돌아가 순수한 창작의 열정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그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소외되는 AI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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