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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창포(菖蒲) 트라우마'

여성들이 단오에 머리를 감는 창포...향이 좋아 술을 빚어 신주(神酒)로 마시기도

보라색 창포꽃 전경./사진=장건섭 기자
▲ 보라색 창포꽃 전경./사진=장건섭 기자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성하의 시간으로 가고 있다. 신안 무지개 마을의 차가운 바람은 물감처럼 여름 속으로 흘러든다. 방식(독일 조경 명장) 미술관을 구경하고 산책에서 만난 창포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단오에는 여성들이 개울가에서 머리는 감는다. 옆에는 그네를 탄다. 5월 5일의 단오절 풍경이다. 짙은 보라색의 창포(菖蒲)다. 단오와 관련된 창포다. 꽃창포는 창포와 같이 산이나 물가의 습지에 군락으로 핀다. 같은 습지에 피지만 창포가 여성들이 단오에 머리를 감는 창포다.

아무래도 무지개 길의 창포는 꽃창포로 보인다. 창포와 꽃창포는 꽃의 모양과 피는 곳은 같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꽃이다. 창포꽃은 부들처럼 작은 소시지 형태로 누런빛이 돈다. 창포의 잎과 뿌리는 독특한 향을 지닌다. 물로 머리를 감고 나서면 동네 골목 어귀에 마주친 촌각들의 시선은 물론 마음을, 흔든다.

창포 뿌리는 깎아 비녀를 만든다. 비녀인 창포잠(菖蒲簪)은 역병을 물리치는 액땜으로 부녀자들이 즐겼다.

창포는 향이 좋아 술을 빚어 신주(神酒)로 마셨다. 막걸리를 담듯이 창포를 짓찧은 것에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창포 주는 임금이나 높은 고관들이 즐겨 마시는 세시(歲時) 주였다.

술을 좋아했던 태종은 신하에게 창포 주 제조를 직접 설명하고 창포 주 으뜸 제조자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에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이 발생하기 전인 1636년 가을, 인조는 창덕궁 후원의 가장 안쪽인 옥류천 권역을 조성한다.

큰 바위 소요 암에 어필로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 앞에는 포석전처럼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도록 얕은 물길을 내고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인조는 그곳에서 내신들과 술잔을 즐기며 풍류를 즐겼다.

기구하게도 그해 겨울 인조는, 청나라의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 했다. 인조는 그 후 신하들이 권하는 창포 주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였다.

인조실록이다. "단오날에 내 자시에서 관례대로 창포 주를 올리고 육조에서 물선(物膳)을 올리니, 상이 한재가 한창 혹심하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인조 17년(1639년) 5월 14일"이라고 실록은 전한다. 인조에게 병자호란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는 고유 명절인 단오절도 의미를 축소하였다. 강릉과 영광에서만 오랫동안 지켜왔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단오제 전후인 18일부터 25일까지 강릉 단오제에 가면 인조가 트라우마로 손사래 쳤던 창포 주를 마실 수 있다.

축축한 찬비는 주룩주룩 나르는데/찬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이고/남색 외로운 창포만 바라본다./빗줄기 속에 떠올랐다간 조용히 숨어 버리는/못 견디게 그리운 모습/혈맥을 타고 치밀어오는 애수 고독 적막/눈물이 조용히 뺨을 흘러나린다./찢기운 이 마음 우수 짙은 빗줄기 속을 방황하는데/한결 저 꽃에서만 설레이는 이 가슴에/정다운 속삭임이/아아, 마구 뛰어나가 꽃잎이 이지러지도록/입술에 부벼 보고 싶고나/미칠 듯이 넘치는 가슴에/힘껏 눌러 보고 싶고나.

신동엽 시인의 '창포' 전문이다.

신동엽 시인의 창포는 여인을 떠올리며 마음이 찢어진다고 한다. 시인의 속내야 시인만이 알겠지만, 인조(仁祖)가 창포 주를 앞에 두고 손사래를 쳤다는 실록과 겹치기만 한다.

우리는 단오를 길일로 여겼다. 1년의 양기가 가장 왕성한 5월 5일이다. 그러나 신동엽 시인의 '창포' 시는 미칠 듯이 넘는 가슴에 힘껏 눌러보고 싶다고 한다. 신동엽은 여느 시인 못지않게 보수적이며 5, 60년대에 한국 시단에 역사 인식에 투철한 시인이다.

신동엽의 '창포'는 여성들이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았다는 풍속과는 거리가 있다. 신 시인의 머릿속에는 인조가 얼음 장위에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을 그려졌을 것이다.

창포가 이지러지도록 역사의 입술을 비벼보고 싶은 것이다. 역사는 늘 이렇게 출렁거리는 것이 진실일까. 오늘의 역사 앞에 신동엽 선배가 마주 한다면 '창포' 시는 또 어떤 구절로 우리의 심금을 저리게 할 것인가?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 저자)./사진=장건섭 기자
▲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 저자)./사진=장건섭 기자
-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 저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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