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속 무심히 소비되는 사물들이 내면의 풍경과 닿아 있다. '치킨'이라는 일상적 사물이 ‘악마’라는 상징과 접 붙으면서 의미의 층위를 깊게 형성하게 한다. 시인, 김행숙, 김언, 장석남 등 현대 시에서 활발히 시도되었던 '사물 시학' 혹은 '감각 시학'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보다 대중적이고 감각적인 접근이 특징으로 나아간다.
치킨과 악마의 시집을 펴낸 김우 시인은 익숙한 말들을 낯설게 전환하는 의미의 재배치 능력이 뛰어난 완숙 토마토 같은 신예 시인이다. 치킨이라는 사물이 시인의 언어 안에서는 어떤 불편한 진실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맛있는 치킨을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아빠,/ 아빠는 월급이 얼마예요?/ 우와 그렇게나 많아요 매일 매일 치킨 먹어도 되겠어요/ 깔. 깔. 깔./ 수퍼맨의 얼굴에도 한 아름 미소가 번집니다'
시의 1연에는 미소 짓게 하는 시어로 산듯하게 걷는다.
2연에서는 '아버지 어깨엔 초원이 얹혀 있다/ 어깨엔 집채만 한 희망의 코끼리가 살고/ 긴 몸 둘둘 말고 있는 구렁이의 근심도 산다/ 언제부터/ 바람이 휘어지고 먹구름 끼는 날이 늘어진' - '치킨과 악마' 부분
시는 41행의 긴 시다. 1연은 아이와 대화로 시작하는 깔깔, 거리는 언어미학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가장의 일생을 그려간다.
시도반은 가장 무서운 시인을 든다면 짧은 시에 소설의 상하권을 담아내는 시인이다. 신동협의 '금강'이 그렇고 권일송의 '바다의 여자', 이근배의 '한강'이 그렇다. 김우 시인은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김우 시인은 노년의 시간을 선비로 살기로 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과정에서 동생뻘 되는 교수에게 뼈를 깎는 선비 수업을 하였다.
이승하 교수는 그를 "뼈를 깎는 자세로 시를 배우는 노년의 선비"라 평한다. 김우 시인은 SNS 단체방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에도 소신 있는 언행으로 선배 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녁 8시에 김우 시인의 시집 <치킨과 악마>를 주문한다. 마치 치킨을 주문하면 오듯이 새벽 5시에 시집이 문 앞에 놓여 있다. 한국의 배달 문화에 감동한다.
김우 시인의 시집을 펼친다. 시어들이 갓 잡아 올린 숭어처럼 퍼덕인다. "노을이 드러눕는 서쪽 하늘/ 바람 타고 숨어드는 앙상한 회상,/ 훔치고 싶다", "오월의 캠퍼스로 투신하는 바람을 보세요", "손톱은/ 하얀 기다림으로 자랐다 사라졌다" 평범한 단어들을 새롭게 새우는 김우 시인의 시적 감각을 배운다.
언어가 감정을 완전히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감들이 있다. 일상의 파편에서 생기는 미세한 불안과 익명의 고독을 시화로 만들어진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어딘가 불편하지만 멈춰 서게 만드는 힘을 부여하며,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시"로 읽힌다.
<치킨과 악마>는 자아의 혼란과 고립, 불안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그것을 무겁지 않게 말하려는 21세기형 자기 고백 시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특성은 문학의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시도로 읽히며, 특히 SNS 세대나 Z세대에게 공감의 창을 열어준다. 김우의 <치킨과 악마>는 포스트모던 감수성과 일상성의 미학이 성공적으로 결합 된 첫 시집으로, 한국 현대 시의 새로운 대중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로 읽힌다.
이는 시가 '심오한 미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치킨을 먹으며 느끼는 삶의 찌꺼기들'로도 구성될 수 있음을 증명하며, "21세기의 감정 언어는 이렇게 작고 가볍게 말해진다"라는 선언처럼 읽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치킨과 악마>는 한 편의 시가 어떻게 현대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김우 시인은 "치킨을 먹으며 느끼는 삶의 찌꺼기"마저도 시로 승화시킨다. 이는 "21세기의 감정 언어는 이렇게 작고 가볍게 말해진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가볍게 읽히지만 깊이 파고드는 시집, <치킨과 악마>는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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