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허세를 멀리하고 탐욕에 물들지 않은 꼿꼿한 시정신으로 한국 시단에 경종을 울리던 이생진 시인이 2025년 9월 19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우리 문단에서 활동하던 최고령 시인이자, 섬과 바다의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 서정시의 한 축을 지탱해온 원로였다.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보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바다와 섬을 떠돌며 평생을 시로 기록했다.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한 이후, 그는 5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시선집, 사화집을 남기며 쉼 없이 창작에 매달렸다.
대표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제주를 노래한 한국 현대시의 명편으로 꼽히며, 고인을 '성산포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했다.
'바다에 오는 이유', '섬에 오는 이야기', '섬마다 그리움이', '먼 섬에 가고 싶다' 등 바다와 섬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모두 그가 평생 추구한 '그리움의 미학'을 보여준다.
1996년 윤동주 문학상('먼 섬에 가고 싶다'), 2002년 상화시인상('혼자 사는 어머니')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이후 2012년 신안군 명예군민이 되면서, 그는 남녘 바다와 섬을 온몸으로 품은 시인으로 기려졌다.
고인은 평생을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았지만, 그 고독을 삶의 진실로 끌어안으며 시를 빚어냈다.
그의 시는 거창한 언어 대신 담백한 서정과 깊은 그리움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섰다.
그의 대표작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슬픔과 그리움을 흡수하는 영원한 존재였다.
또 다른 작품 '실컷들 사랑하라'에서는 인간의 덧없음과 사랑의 소중함을 구름에 빗대어 노래하며,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사랑이야말로 유일한 위안임을 전한다.
2009년, 제주 성산포 오조리 해안에 '이생진 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올레길을 걷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그곳에 세워진 시비는 그의 문학적 자취이자,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는 바다의 노래다.
그의 시와 삶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생진 시인의 작품은 우리 마음속에 바다를 열어주었다"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生前 고인은 "사람의 인생도 언젠가 사라지지만, 우리가 간직한 그리움만은 영원히 남는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그는 "삶과 죽음은 결국 그리움으로 이어진다"는 철학을 詩를 통해 남겼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시인을 떠나보내지만, 동시에 바다와 섬의 언어로 새겨진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故 이생진 시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詩가 노래한 바다처럼 영원히 흐르기를 기원한다.
故 이생진 시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025년 9월 21일(일)이고 장지는 1차 서울추모공원, 2차는 경춘공원이다.
다음은 장건섭 시인(본지 편집국장)의 이생진 시인에 대한 추모시다.
바다로 돌아간 이름, 이생진
- 장건섭 시인
바다는 끝내
당신을 품고 싶어 했습니다.
섬마다 그리움이 피어날 때,
당신은 고독을 짊어진 작은 배가 되어
먼 섬으로, 더 먼 섬으로 떠나셨지요.
술에 취한 파도와
등대 곁 바람 속에서
홀로 코를 고는 모습조차
우리의 시가 되었고,
삶의 진실이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고독했던 순간,
그 모든 허구의 틈마다
당신은 바다를 불러내어
우리의 가슴을 채우셨습니다.
이제 97년의 긴 항해를 마치고
성산포 푸른 물결 위에
당신의 이름은 별빛처럼 흩어집니다.
살아서 그리웠던 모든 이들,
죽어서 만나러 가시겠지요.
살아서 바다를 노래했던 시인,
이제 바다의 한 부분으로 남으시겠지요.
오늘, 詩壇은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허세를 멀리하고
탐욕을 거부한 그 꼿꼿한 문장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詩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당신이 남긴 질문은
파도처럼 이어지고,
당신이 남긴 노래는
섬마다 그리움으로 피어납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그리운 시인 이생진,
이제 영원히 바다의 품에서
편히 쉬소서.
i2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