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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문덕수문학상 시상식… 강연호 시인 <하염없이 하염없는>으로 수상

문덕수문학상, 고요의 긴장을 지켜낸 시인에게 돌아가다
"과장 없는 고요 속에서 사유의 긴장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언어적 성취"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재단법인 심산문학진흥회(이사장 문준동)가 주관한 제11회 문덕수문학상 시상식이 12월 1일 서울 중구 문학의 집·서울에서 열렸다. 문덕수 시인의 존재 사유와 구조적 실험 정신을 기리는 이 문학상은 매해 한국 현대시의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을 선정해 왔다.

올해의 영예는 강연호(姜演浩) 시인의 시집 <하염없이 하염없는>에 돌아갔다. 심사위원과 수상자는 모두 하나같이 '말의 절제'와 '고요 속의 긴장'을 이번 수상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이 선택은 지금 한국 시단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시인은 어떤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는지를 묻는 응답처럼 들린다.






이번 제11회 문덕수문학상 시상식은 단순한 시상(詩賞)의 행사를 넘어, 오늘 한국 시의 지형을 가늠해보게 하는 풍성한 사유의 장이었다.

행사는 개식 선언과 경과 보고, 심사 경과 발표, 시상 및 수상 소감, 축하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심산문학진흥회 관계자 및 문학인, 수상자 축하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겨울 초입의 차가운 공기를 잊게 할 만큼 따뜻한 문학적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심사와 선택 … '고요'가 드러낸 힘

심사위원단(이숭원·이은봉·오형엽·김철교·이성천)은 약식으로 정리된 일정표와 예심·본심의 절차를 거쳐 <하염없이 하염없는>을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성천 심사위원(경희대학교 교수)은 심사기에서 "과장 없는 고요, 과장 없는 깊이."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칭찬이 아니라, 현대의 언어 풍경에서 과잉과 소음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덜어냄의 윤리’를 실천한 시집에 대한 간결하지만 핵심을 정확히 관통한다.

이성천 심사위원은 강연호 시인의 시 세계를 "과장 없는 고요 속에서 사유의 긴장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언어적 성취"라고 평가했다. 특히 일상의 사물을 정제된 감각으로 포착하고, 말과 말 사이의 여백에서 존재의 떨림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태도를 문덕수 문학정신과 깊이 호응하는 지점으로 꼽았다.


수상자의 목소리 … 시인의 자기 고백

강연호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시를 믿고 어떻게든"이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시작해, 문학의 변방성, 문학의 질문성에 대해 고백했다.

그는 "말보다 더 조용한 자리"를 택해온 자신의 길을 담담히 서술하면서도, 문학이 가진 사회적 위치-중심이 되지 않음, 확신을 가지지 않음-이 오히려 문학을 문학답게 만든다는 성찰을 전했다. 이는 그의 시에서 강조되는 '작은 목소리의 무게'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수상소감의 또 다른 울림은 '연속성'에 대한 인식이다. 문덕수의 이름을 빌린 상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문학적 계보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강연호는 그 계보를 두려움과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향후의 창작 태도를 다짐했다.

강연호 시인은 “말이 깊어지는 자리에서 시는 다시 시작된다”며 “사라질 듯한 기척을 오래 듣는 쪽을 선택해 왔다. 앞으로도 세계의 고요함 속에서 더 정직한 말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강연호의 시는 현란한 수식이나 감각적 자극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언어의 호흡을 길게 하고 문장 사이의 여백을 남겨두어, 그 속에서 사유의 미세한 떨림과 존재의 그림자를 일으킨다.

심사위원들은 바로 그 '여백의 힘'을 문덕수 시인의 정신-언어의 구조적 실험과 존재성의 성찰-과 연계해 읽었다. 문덕수가 구조시로 보여주었던 '언어의 구성성'과 '시적 사유의 치밀성'은, 강연호의 '고요에서의 팽팽한 긴장'으로 다른 결을 만들어낸 셈이다.

등단 이후 줄곧 내면의 울림과 존재의 미세한 흔적에 귀 기울여 온 그의 시적 여정이 문학상으로 다시 한 번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난 강연호 시인은 1991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이후 <비단길>,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하염없이 하염없는> 등 여러 시집을 통해 꾸준히 개성적 서정의 지층을 구축해 왔다.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작품의 내적 풍경 … <하염없이 하염없는>의 사유

<하염없이 하염없는>은 표제에서부터 역설을 품는다. '하염없이(끝없이, 쉼 없이)'와 '하염없는(무의미한, 묵묵한)' 두 의미가 얽히며, 존재의 지속성과 무의미의 경계가 서로를 비춘다.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주요한 미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요의 언어다. 강연호의 문장은 대부분 소음 없이 낮게 깔린다. 다만 그 낮음이 사유의 결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톤에서 더 깊이 들리는 울림이 있다. '세계가 고요하면 긴장해야 한다'는 심사기의 인용구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한다. 고요를 안주가 아닌 감시의 상태로 보는 역발상이다.

둘째, 일상적 이미지의 전환력이다. 일상의 사물과 풍경은 그의 시에서 은근한 심상으로 환원되며, 그로부터 존재의 조건이 유추된다. '나무의 엑스레이'처럼 과학적 이미지마저 상징으로 전환되어 존재의 높이와 뿌리에 관한 윤리를 말하게 한다. 이러한 치환은 화려함이 아닌 '낯설게 하기'의 고전적 기법을 조용히 재현한다.

셋째, 사유의 지속성이다. 강연호의 시편들은 마감된 해석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연장하고, 독자가 그 질문을 안고 가게끔 열린 결말을 허용한다. '흐르는 생각이 강물'이라는 비유는 단순한 은유를 넘어서서, 사유의 불가역성-한 번 흘러간 생각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불가역성은 "잘 살아야 한다 / 그래야 시인이다"라는 결기 있는 명제로 수렴한다.

문맥 속의 수상… 전통과 실험의 교차

문덕수문학상의 제정 취지(문덕수의 문학정신 계승)와 수상자의 작품 경향 사이의 연관성은 이번 수상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문덕수 시인이 1950~60년대에 보여준 '구조시'의 실험성은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시적 가능성을 확장했다. 강연호 시인은 그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 '실험적 태도'를 서정의 미감 속으로 흡수시켜 보이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즉, 실험성과 서정성의 결합, 형식 실험의 내면화를 통한 존재성의 응시가 이번 수상의 문학적 의미다.

또한 이번 수상은 '과잉의 시대'에 던진 하나의 선언처럼 읽힌다. SNS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감각의 과다 속에서 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강연호 시인의 선택은 답을 제시한다. "덜 말하는 쪽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시는 즉각적 반응을 촉구하기보다 오래 견디는 말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덕수문학상의 의의와 전망… 한국시단에 남긴 질문

한편, 문덕수 시인의 문학을 기리고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연구·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재단법인 심산문학진흥회는 매년 문덕수문학상을 통해 창작의 깊이와 실험성을 아우르는 작품을 조명해 오고 있다. 특히 한국 현대시의 구조적 역동성을 확장해 온 문덕수 시인의 정신을 다음 세대의 문학으로 잇는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시상식은 조용한 언어로 세계의 진동을 감지하는 시인의 시선을 통해, 문학이 여전히 삶의 본질을 질문하고 위로를 건네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문덕수문학상이 매년 보여준 것은 '시의 실험성과 진정성'이 얼마나 공존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이번 수상은 이러한 전통을 재확인시키는 동시에, 서정의 복원과 그 내부적 실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향후의 논의 지점은 명확하다.

첫째, '고요의 정치학-언어의 절제가 어떤 정치적·윤리적 함의를 갖는가-를 더 면밀히 성찰해야 한다. 고요가 때로는 침묵의 동의(黙認)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고요가 어떻게 사유의 근력을 길러내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둘째, 시의 공공성-현대 사회에서 시는 어떠한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의 재정의다. 강연호 시인이 보여준 '말의 책임'은 시가 단지 개인적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공동체적 성찰을 가능케 하는 언어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장르의 경계와 통섭-구조적 실험과 서정적 감수성의 융합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형식을 낳을지-에 대한 상상이다. 문덕수의 구조시가 그랬듯이, 다음 세대의 시는 다시금 형식과 의미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할 것이다.






"세계가 고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들을 것인가"

이번 문덕수문학상의 선택은 조용한 명령처럼 들린다. 소란스러운 시대에 시는 더 크게 외치지 않는다. 대신 더 오래 듣고 더 깊이 생각하는 쪽을 택한다.

강연호 시인의 시집은 그러한 태도의 미학적 구현이다. 그가 택한 길은 당장 눈에 띄는 불꽃을 만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을 오래 걷는 자의 말은, 시간이 흘러도 서늘한 진실을 남긴다.

'세계가 고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들을 것인가.' 문덕수문학상이 들려준 질문은 단순히 문학 내부의 논쟁을 넘어 우리 시대 전체에 던져진 물음이다.

강연호 시인의 시는 그 물음에 한 번의 답을 내놓았다. 답은 소박하고 단정하다. "더 정직한 말을 찾겠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우리 모두가 응답해야 할 질문으로 남는다.

한편 문덕수문학상 역대 수상로는, 제1회(21015) 신규호 시인, 제2회(2106) 박이도 시인, 제3회(2017) 고창수 시인, 제4회(2018) 홍신선 시인, 제5회(2019) 박진환 시인, 제6회(2020) 이향아 시인, 제7회(2021) 신진 시인, 제8회(2022) 이기철 시인, 제9회(2023) 임보 시인, 제10회(2024) 이숭원 시인, 제11회(2025) 강연호 시인이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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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정근옥 시인의 시 '칼의 눈빛'… 권력과 진리 사이, 날 선 은유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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