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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강 문화의 유감

한 밤중에 걸어서 한강다리를 건너본 적이 있는가. 차량을 이용하여 건넌 사람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다리의 공법과 진출입의 편의성 등을 의식하는데 정작 도시가 잠든 한강의 풍광은 간과한다. 그러나 걸어서 건넌 사람은 다리품을 판만큼 강의 아름다움에 취해 서울을 예찬한다. 서울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서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서울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고궁을 걷거나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중후한 역사를 음미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남산에 올라 정경을 살펴보고 한강변을 거닐며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특히 한강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물에 비친 휘황한 불그림자의 흔들림에 빠져들면 잊었던 첫사랑에 침잠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결국 서울이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고 찬양하는 이들은 대부분 한강에 비친 밤경치에 매료된 사람이다. 강은 그렇게 인간에게 살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강물은 흘러간다. 정체성 없는 유장한 흐름은 사람의 마음에 비집고 들어 자꾸만 추억을 아프게 꼬집는다. 내성적인 사람일수록 물결은 가슴 깊이 파고들어 과거로의 회귀를 강요한다. 그것은 유쾌한 추억보다 아픈 기억을 되살려내는 음울한 리듬이 되어 가슴의 빈 공간을  출렁인다. 공간이 크면 클수록 추억의 울림도 커져 결국엔 우울증에 시달리고 투신하는 비극을 연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가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가 급매물로 나온다.

물은 동적 대상으로서 양(陽)의 속성이 많아 보이지만 그런 음울한 특성 때문에 음(陰)으로 본다. 햇살의 따뜻한 기운에 비해 햇살을 등진 음습한 곳의 눅눅함을 물의 속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도 하루 이틀이지 흘러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처량해 보이고 모든 것이 내 곁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허무주의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주요한은 ‘불놀이’에서 강이 주는 부정적인 의미를 노래했다.

유럽에 다녀온 사람은 한결같이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찬한다. 세느강이 어떻고 템즈강이 어떻다면서 한강을 자랑스러워한다. 심지어는 외국의 강은 한강이 비해 또랑 수준밖에 안 된다며 한껏 한강의 위상을 드높인다. 맞는 말이다. 한강이 그렇게 위대한 만큼 서울은 당연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도시다.

그러나 한강은 아름답고 유구하지만 살아있는 유적으로서 문화재가 없다. 오직 급성장한 자본주의의 외양과 가공에 의한 문명이 우뚝 서있을 뿐이다. 그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강의 넓이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의 강은 폭이 좁은 것이 오히려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좁은 강을 도시의 중심으로 삼아 양안(兩岸)에 대칭적으로 건물을 세워 균형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에 비해 한강은 강폭이 1km에 이르다보니 아예 도심의 중심축에서 밀려났다. 수지북왈양(水之北曰陽)이라는 풍수 이론에 의해 한강의 북쪽만을 양(陽)으로 여겼기에 한강은 아예 변방의 수로(水路)로 취급한 것이다. 다행히 강남 개발의 영향으로 한강이 서울의 도심으로 자리 잡았으나 ‘저자도’와 같은 섬들을 파헤치고 시인묵객들의 정취가 살아있던 정자도 무너뜨려 한강의 격을 깎아내렸다.

음(陰)은 양(陽), 양은 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양의 강북과 음의 강남을 이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강에 무수한 다리를 건설했다. 그러나 문화가 없는 한강은 다리가 아무리 많아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세느강과 템즈강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은 강이 넓고 물이 맑아서가 아니다. 노트르담대성당과 알렉상드르3세교 같은 문화유적이 있고 민주주의의 산실로서 국회의사당과 타워브리지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한강은 곧 서울과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문화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 모습을 갖추어 강 때 더 많은 외국인이 찾아들 것이요 서울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느낄 것이다. 그런 날을 고재하며 밤중의 한강 다리를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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