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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첫 문장의 품격'

글쓰기의 극복은 첫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간밤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깨어나셨어요. 어제 보던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래요." 시체도 깨어나게 한다는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극작가를 말하는 우스개 농담이다.

하지만 김수현도 글의 첫 문장을 위해 펜촉의 예열(豫熱)은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첫 문장은 작가와 독자가 처음 눈빛 교환의 순간이다. 아차 하면 드라마의 경우는 채널은 돌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시(詩) 창작도 그렇다. 첫 행이 독자의 머리와 마음에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을 낚아 끌지 못하면 다음 행은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다.

어니스트 헤밍웨이(Hemingway, Ernest Miller.1899~1961)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도입 부분에 200번 넘게 수정한 문장을 사리처럼 빛이 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는 멕시코 만류(灣流)에서 작은 배를 타고 혼자서 고기를 잡는 노인이며, 84일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이런 경우 패배에 익숙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노를 저어 나간다.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의 처지와 이 책을 집필하던 시기의 헤밍웨이의 상황과 무척 비슷하다.

누구나 시련은 있는 법.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헤밍웨이가 1950년 '강 건너 숲속으로' 출간에서 이렇다 할 반향을 끌지 못했다.

가혹한 비평에 시달렸다. "이제 헤밍웨이도 끝이 났다." 작가의 자존과 예민함을 짓누르는 소문이 가슴을 두들겨 다가왔다.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펜을 내려놓는 대신 글쓰기를 위해 바다로 나아가는 선택을 했다.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낚싯줄을 드리우는 산티아고가 되었다.

헤밍웨이는 1952년 비평가의 혹평을 떨치고 '노인과 바다'를 내놓았다. 노벨상을 받기에 이른다.

1962년 대학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 연습'으로 등단한 '무진기행'의 김승옥도 소설의 첫 문장에 무던한 시도를 했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의 첫 문장을 위해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많은 파지(破紙)를 내어야 했다.

지난 25일 작고한 이외수 소설가도 첫 문장을 위해 수만 장의 파지를 냈다. 작가들은 두세 줄의 펜 자국을 낸 원고지도 가감 없이 파지로 버린다. 요즘이야 타자기를 거처 워드의 시대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원고지에 직접 펜촉을 올렸다. 아침이면 온방에 파지가 수북이 쌓였다. 이외수의 아내는 파지를 일일이 정리하며 "소설가의 심장은 온전할까"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렇듯 작가는 첫 문장을 위해 소태를 핥는 시간이 요구된다.

언어도 서까래처럼 건축의 형태로 전환하고, 적절한 설계도의 위치에 배치한다. 그것은 미적 심리적,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40년이 넘게 번역가로 활동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 교수의 번역 후일담을 기록한 '김화영의 번역 수첩'에서 "나는 늘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라고 했다. 평생을 언어의 서까래를 정돈하였던, 노회한 번역학자의 술회다.

첫 문장의 고갱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들은 여기에 수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학인은 이런 경우에 권유한다. 첫 문장을 비워두고 두 번째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힘을 빼고 글을 쓰는 방법의 요령이다. 극복의 힘이란 늘 완벽한 것으로 채워 줄 수 없다.

삶은 정답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글쓰기의 정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앞으로도 없다. 예수나 카이스트 대학에 물어도 없을 것이다.

글쓰기의 극복은 첫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이다. 극복이란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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