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세자매’는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으로 현대연극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901년 모스크바 예술극장 초연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연극,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말 러시아 변방 도시에서 살고 있는 세 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꿈은 하루 빨리 고향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것. 모스크바는 이들에게 이룰 수 없는 허망한 꿈일 수도, 어쩌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희망일 수도 있다. 꿈은 점점 멀어지고, 사랑마저도 잃은 이들에게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한다고 연극은 말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밝고 담담한 세자매 모습이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등장인물간의 욕망과 감정의 조용한 충돌, 대사의 압축과 상징, 유머러스한 상황 속에서 배우들의 캐릭터는 생생하게 살아났다. 극 중 든든하면서 올곧은 맏언니 올가역의 양선영,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는 마샤역의 박예진, 티 없이 밝고 순수한 막내 이리나역의 조윤정까지 이들의 완벽한 호흡은 2시간 동안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한중곤, 강승우, 이혜원, 정이형, 최진영, 이영환 등 18명의 주ㆍ조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는 극의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체호프의 명작답게 작품 속 명대사가 관객과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소설은 결말이 분명하지. 그런데 현실은, 막상 사랑을 해봐.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뚜렷한 답을 몰라.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한다는 걸 알게 될 뿐이야.”(마샤 대사 중) “인생은 괴롭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빠져나갈 길도 희망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역시 차츰 밝고 살기 편하게 되어 간다는 것만은 인정해야합니다.”(베르쉬닌 대사)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무대 미학도 돋보였다. 실제 자작나무를 무대에 옮겨온 세트와 앤티크 소품과 가구들로 배치한 무대장치,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를 상징하는 의상, 감성을 자극하는 안무와 음악까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장치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만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절망의 끝에서 세자매가 다시 살아가야할 것을 다짐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선자(48, 광주 유촌동)씨는 “올가가 마지막에 ‘다시 살아가야해’라는 대사가 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현숙(36, 광주 남동)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두 시간이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을 만큼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공연이다.”
광주시립극단 나상만 감독은 “철학적 주제와 대사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에 좀 더 경쾌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풀어냈다. 관객들은 체호프식 코미디를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광주시립극단은 이번 공연을 마무리하고, 내년 봄 공연 준비에 들어간다. 워렌 아들로 원작으로 1990년 개봉한 동명영화 ‘장미의 전쟁’을 희곡화 한 ‘로즈가의 전쟁’을 국내 초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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