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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김밝은 시인의 '가파도라는 섬'

"황금빛 바람과 보랏빛 장다리꽃의 속삭임에 온전히 나를 맡겨보던 시간"


가파도라는 섬

- 김밝은 시인

아무도 모르게 껴안은 마음일랑
가파도 되고 마라도 되지,
어쩌면 무작정 가고파 일거라는 말

고개를 저어도 자꾸 선명해지는 너를 떠올리면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함께 달려와
까무룩해지는 장다리꽃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곤 하지

바람을 견디지 못한 이름들은 주저앉아버렸고
청보리는 저 혼자 또 한 계절을 출렁이고 있는데

어루만지다, 쓰다듬다 라는 말이
명치끝에서 덜컥 넘어지기도 하는지
곱씹을수록 까슬까슬해지는 얼굴도 있어

보고파, 라는 말을 허공에 띄우면 대답이라도 하듯
등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파도의 손짓까지
뜨겁게 업은 너

심장에 가까운 말* 한마디는 어디에 숨겨놓은 것일까

* 박소란 시인의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제목 인용

■ 시작메모
제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자석에 이끌리듯 한동안 제주앓이를 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제주가 몸살을 앓지는 않았던 때, 비행기 표가 없으면 배를 타고 갔다. 그렇게 애월을 지나 가파도에 닿았다.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던 가파도. 보리밭 사이로 지나던 황금빛 바람과 보랏빛 장다리꽃의 속삭임에 온전히 나를 맡겨보던 시간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면 생각이 맑아졌다.

가파도에 가시거든 꼭 하룻밤은 머물기를 권한다. 그래야 가파도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절로 고개 끄덕여질 것이다.

■ 김밝은 시인
-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 시집 <술의 미학>,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 시예술아카데미상, 심호문학상 수상.
-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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