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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택시운전사'에 이은 역사적 아픔, '삼청교육대' 영화로 재조명한다

김종섭 에버시네마 회장, "80년대 초의 한국판 수용소군도 '삼청교육대' 재조명 할 터"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영화 '실미도'와 '택시운전사'의 후속편 격인 80년대 초의 한국판 수용소군도 '삼청교육대'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실미도'는 북파 공작원을 양성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고, '택시운전사'는 80년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외국인 기자의 시선으로 광주의 아픔을 다룬 영화다. '삼청교육대'는 권력에 희생당한 민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로, 암울했던 군사정권시대가 만들어낸 적폐로 27년만에 영화로 만들어진다.

역사적 스토리에 영화화가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제작되고 있는 '삼청교육대'에 대해 심층 취재해 본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전두환 정권의 위기이자 기회였다. 하지만 총검(銃劒)은 그들만의 힘이자 승리의 밑바탕임이 금방 입증되었다.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가 설치되었고, 정부의 모든 권력은 실질적으로 장악되었다. 그 목표는 불안한 권력의 안정적 확보였다.

국보위가 내세운 네 가지 과제 중, 네 번째가 '사회악(社會惡) 일소(一掃)에 의한 국가 규율의 확립'이었고, 그들은 사회악을 '국가의 안전 보장과 사회 안정을 저해하고, 국민의 혐오와 원성의 대상인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조직·상습 폭력, 치기배, 기타 퇴폐적인 행위자, 그리고 재범의 우려가 있는 자’로 규정하였다.

이는 박정희 정권 탄생 과정을 철저하게 모방한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정치 깡패를 제거한다는 명분과 함께 1만 5천 800명의 폭력배를 검거하였고, 이들 폭력배를 국토건설단(國土建設團)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국토 건설 사업에 강제 동원하였다. 공공질서와 사회를 파괴하는 불량배를 제거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이들을 근로 생산 현장에 투입함으로써 대중적 관심을 돌렸던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대중조작 수법이었다. 그 효과는 컸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폭력배를 소탕하여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는 명분으로 1980년 8월 4일 사회악일소특별조치 및 계엄포고령 제19호에 의한 삼청5호계획에 따라 삼청교육대(三淸敎育隊)를 설치하였다.

삼청순화교육은 11공수단과 13공수단 등 특전사를 중심으로, 전국 25개 사단에서 실시되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소와 훈련장은 이미 두세 달 전부터 준비되었으며, 교육을 담당할 조교들은 미리 차출되어 강도 높은 유격훈련을 받기도 했다.

당초에는 2만 명 수준을 목표로 하였으나 경찰서 간에 과잉 충성경쟁이 붙어 영장 없이 검거된 시민 들은 6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대상자에는 학생과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으면 전체 피검자 중 1/3 이상이 본연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무고한 시민이었다. 검거된 사람들은 네 등급으로 분류되었고 주 Target은 B와 C등급이었다.

A급은 폭력조직의 수괴, 마약밀수, 전과가 많은 자 등으로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군사재판의 대상이었다. B급은 기타 정치·경제 폭력배, 강도·절도 등 재범의 위험이 있는 전과자로 4주 순화교육 후 근로봉사, C급은 폭력 사실이 경미하고 우발적인 경우 등으로 4주 순화교육이었으며 D급은 훈방 대상자로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시검문 시 신분증을 미지참했다는 이유만으로 B급으로 분류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전두환을 조금이라도 비방한 자는 가차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끌려간 사람들 중엔 나이 어린 중, 고등학생(14세~17세)도 있었고, 주로 부모가 항의할 여력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 자녀나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잡혀갔다. 어떻게든 할당량을 채우라는 명령으로 인해 연고가 없으면 잡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말이 교육이지 구타와 가혹 행위로 시작된 교육은 야만적 폭력의 연속이었다. 젊은 군인들은 대상자 전부를 범법자와 동일시했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조직 폭력배, 깡패를 다룬다는 지침이 내려졌고 기선 제압을 위한 선제 폭력이 허용되었다. 조교들에게는 제압하지 못하면 오히려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끊임없이 주입했다. 젊은 군인들은 처음부터 필요 이상의 폭력을 사용했고, 그 결과 엄청난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조교들이 맞이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 많은 형님이나, 심지어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처음에는 말조차 쉽게 놓지 못했다는 한 조교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참에게 두들겨 맞아 척추 뼈를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교들은 삼청교육대 수련생들을 개나 돼지같이 다루었다.

잔혹한 신체 폭력과 가혹 행위는 모든 삼청교육대 공통의 일상이었다. 1사단에서 교육을 맡았던 이 조교는 자신의 수련생들을 넓고 깊은 군대 화장실 분뇨 속에 집어넣어 그 분뇨가 다 닦일 때까지 집어넣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가학적이고도 잔인한 폭력의 실상은 삼청교육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 결과 훈련 기간 중 자살을 포함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1988년 국방부는 현장에서 사고 등으로 사망한 사람만 54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 상해자 2678명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이 숫자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시각이 대부분인데, 어느 교관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부대에서만 3명이 자살을 하였고 또 다른 교관은 자신이 속한 연대에서만 11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 사망자 수는 현장 및 후유증 합쳐 1천 명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삼청교육 피해보상계획'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하고 '삼청교육대' 입소 피해자 3,226명의 보상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2002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에 대한 조사결과,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청교육이 위법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마침내 2003년 제16대 국회에서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며, 2004년부터 제정돼 국방부 산하에 관련 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시 보상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까다로운 보상 규정으로 인해 39,000여 명의 피해자 중 신청자는 4,600여 명에 불과했고, 보상금액도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한편 '삼성교육대'의 영화화까지는 각고의 진통을 겪었다.

2004년 영화사 '에버시네마'는 영화제작을 진행됐다. 강철웅 에버시네마 대표는 상표권 등록을 포함에 저작권을 획득했다. '김의 전쟁', '테러리스트'의 김영빈 감독, KBS 역사 대하드라마의 거장 김재형 감독 등 5명의 감독에 의해 작품이 준비됐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마침내 촛불민심을 등에 엎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강철웅 대표와 메트로사우나를 운영하는 김종섭 대표가 의기 투합하면서 영화제작에 들어가게 됐다.

김 회장과 강 대표는 광주 동신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함께 산악회 멤버로 지내면서 가까워졌다. 김회장은 14년 동안 강대표가 ‘삼청교육대’를 제작하기 위해 깊은 애정을 갖고 지켜온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려는 그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아 제작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영화 초기 투자는 김종섭 회장이 책임지고 있다. 감독은 '조폭마누라 2', '가문의 영광'을 연출한 정흥순 감독을 내정하고 각본 작업을 시작했다.

김종섭 회장은 "강철웅 대표가 14년 동안 삼청교육대를 영화화하기 위해 많은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는 누군가가 감추고 싶은 적폐인 80년대 초의 한국판 수용소군도 '삼청교육대'를 재조명 하기 위해 이제는 제작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영화 '삼청교육대'가 출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자 역할을 다 할 생각"이라며 "역사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삼청교육대'는 이전에 작성된 시나리오는 덮어두고 새로운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휴머니즘에 무게를 두고 각본을 새롭게 쓰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25살 국어선생으로 그가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보고 경험한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할 예정이다. 주인공은 중국과 일본에 인지도가 있는 젊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 할 계획이다. 영화를 위해 20년 동안 삼청교육대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김 회장은 "영화는 허구의 예술이지만 사실 고증을 철저히 해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남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재미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현재 세트장 건립을 위해 강원도 고성, 전라도 함평 등 여러 곳에서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라며 "촬영장은 후에 역사문화관으로 단장해 삼청교육대에 관한 자료들을 함께 전시해 후대 젊은이들에게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사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영화 '삼청교육대'는 과도한 폭력과 액션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가 아닌 인권유린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적절한 멜로드라마를 가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영화 '삼청교육대'는 군사정권이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며 "그 당시에 '삼청교육대'를 통해 인권탄압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가 공감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역사에 잘못된 암덩어리 같은 이 사건이 낱낱이 밝혀져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데 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시대적으로 지금까지는 '삼청교육대'가 영화화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김영삼 정권 때 제작을 시작했는데, '삼청교육대'를 경험한 90% 이상이 현재 살아있다"며 "후유증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아픔을 갖고 살고 있다.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도 진행되지 않았다. 중증피해자만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역사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 '삼청교육대'에는 프로듀서로 충무로에서 오랜 제작 경험을 가진 진명 프로듀서와 강성환이 함께하고 제작이사로는 허정이 참여하고 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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