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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운 작가, 만해평전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전2권)> 출간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랑이며 자부심, 만해 한용운 일대기를 집대성한 소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김호운 작가(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가 최근 장편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전2권)를 도서출판 도화를 통해 출간했다.

이승하 문학평론가(중앙대학교 교수)는 "김호운 장편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기존의 만해 한용운 평전과는 달리 인물들의 성격 부각과 사건의 디테일한 묘사, 대화의 감칠맛에 신경을 많이 썼다"라며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합친 50년 정도의 역사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하 평론가는 그러면서 "만해평전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우리 소설문학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승려, 학자, 시인, 독립투사 만해 한용운의 원동력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젊은 시절 그에게 도대체 어떤 생의 궤적이 있었기에 이런 1인 다역의 삶을 영위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해 한용운의 불가 귀의 이전의 편력과 귀의 이후의 사회활동과 독립운동에 대한 서사를 그리고 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부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 평범한 농사꾼으로 살아가던 한유천(한용운)은 머리가 비상해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며 <서상기>를 독파했고 <통감>을 읽고 뜻을 다 파악했으며, <서경>을 거듭 읽어서 기삼백주(朞三百註)를 통달한다.

1896년 17세에 서당의 훈장이 병석에 눕자 스승의 뒤를 이어 학동들을 가르치던 유천은 의병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난다. 나라를 구하고자 참가한 창의군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고향에 가면 옥살이를 할 처지에 놓인 유천은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한다.

불목하니 노릇을 하면서 절밥을 얻어먹고 있던 유천은 7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녹슨 호미와 아내이다. 집에서 몇 달 머무는 동안 아내가 임신을 하자 계속 있다가는 농사꾼으로 생을 마칠 거라는 예감이 들어 집을 나와 떠돌던 유천은 오세암에서 만난 지우스님 인도로 백담사에서 불가에 귀의한다.

이때가 26살이었고 계명은 봉완이다. 봉완은 절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편력을 하다가 강대용의 누이동생 강연실과 인연을 맺는데, 둘의 관계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봉완은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사람들을 만나고 견문을 넓히는 와중에 일진회 중으로 오인 받아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귀국길에 오른다.

조선으로 돌아온 봉완은 석왕사에서 석전 박한영 스님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국내 불교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망국의 길로 걸어가는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눈을 뜬다.

이 무렵 한영스님과 시를 주고받으면서 시의 묘미를 알게 된다.

다시 백담사로 간 봉완은 학암스님에게서 <기신론>을 배우고 원효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원각경>과 <능엄경>도 배우며 용맹정진하면서 법력이 깊어진다.

1907년 봉완은 건봉사의 만화스님에 의해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로 다시 태어난다. 1907년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해이기도 하다. 일본에 가서 제국의 실체를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한성으로 간 만해는 강연실이 일진회 회원이자 통감부 직원인 이용범의 후처가 된 것을 알게 된다.

지피지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에 간 만해는 시모노세키, 미야지마, 교토 등지를 순유하면서 신문물과 일본 불교를 시찰한다.

도쿄의 고마자와 학림대학에서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하며 견문을 넓힌다. 조종동의 대표 승려 히로쓰 다케조와, 아사다 오노야마 교수, 일본 유학 중인 최린 등과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서 한일관계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확립하게 되고, 일본에 정신적으로 예속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일본 여행 중에 일본이 곧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토지사업을 하리라 예측한 만해는 이에 맞서고자 측량기계를 구입하고 귀국 후에는 경성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해 소장으로 취임한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더라도 개인 소유 및 사찰 소유의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토지 측량을 치밀하게 하고 토지문서를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만해의 예측대로 일본은 1908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토지사업을 실시하고, 토지문서에 없는 땅은 일본의 귀속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 30대에 접어든 만해는 강원도 표훈사에 불교 강사로 취임하지만 한일합병 소식에 절망하면서도 조국의 독립운동과 불교계의 개혁운동을 동궤에 놓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하고, 한일불교동맹조약 체결 조짐이 보이자 승려궐기대회를 개최해 분산하고, 범어사에 조선임제종 종무원을 설치해 관장에 취임한다.

1911년 만주로 쫓겨나지만 이때다 싶어 만주지방 독립군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고, 망명 중이던 박은식 이시영 윤세복 등 독립지사들과 만나 향후 독립운동의 방향성을 논의한다.

1913년 박한영 장금봉 등과 불교종무원을 창설하고 다음 해에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한다. 1914년에는 뷸교 경전을 대중이 읽을 수 있도록 <불교대전>을 발행하고, 1917년에는 <정선 강의 체근담>을 발행하고, 1918년 월간 <유심>을 창간한다.

비록 조국 산천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지만 만해는 불교계의 핵심인물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다.

만해는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조선 독립을 천명해 세상에 알리는 일에 목숨을 내놓기로 한다.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를 설득해 앞장세우고 문장력이 뛰어난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 초안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초안이 넘어오자 자구를 수정하고 공약 삼장을 추가한다. 소설은 사실상 만해의 주도로 진행되는 기미년 3월 1일의 대한독립운동 과정의 상황을 시종일관 긴박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침내 3월 1일, 탑골공원 옆 태화관에서 모여 독립을 선포하다가 투옥된 만해는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도 독립운동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1922년 5월에는 조선불교청년회 주최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철창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그해 9월에는 조선학생회 주최로 천도교회관에서 '욱바라밀'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강연을 한다.

일본이 만해를 다시 구속하지 못한 것은 그랬다가는 무슨 소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26년에 <십현담주해와>, <님의 침묵>을 발간하고, 다음 해에 항일 단체인 신간회를 발기한 만해는 조선불교총동맹을 발족하고 일제의 불교탄압에 정면으로 맞선다.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나자 민중대회를 열어 장거를 지지한다. ‘심우장’을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고 지을 수 없다고 북향으로 지은 것은 만해의 대꼬챙이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만해는 광복운동의 선구자 김동삼이 옥사하자 유해를 심우장으로 모셔와 오일장을 지내기도 한다.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인 학병 출정을 반대하기도 한 만해는 광복 1년을 앞둔 1944년 6월 29일 신경통이 악화 되어 심우장에서 입적하는데, 예순다섯이었다.

김호운의 장편소설 <님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이처럼 만해 한용운 일대기의 활동상을 치밀하고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놓친 부분이나 각종 재미있는 일화들을 발굴하여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입체감 있게 보여주면서 만해를 생생한 인물로 재현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용범의 개심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친일로 돌아선 인물들에 대한 심판조의 비난도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일진회에 몸담았던 친일 부역자들이 마음을 바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시작한 '대동단' 사건은 우리 역사에 묻혀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한때 친일분자였던 것만으로 지금까지 역사의 정면에 서지 못한 그들의 활약상을 잘 보여준다.

만해 한용운 하면 ‘님의 침묵’을 쓴 시인이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덧붙이면서도, 그 외의 것은 잘 떠오르지 않은 독자들에게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집대성해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김호운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2, 3시에 일어나 손을 닦고 향을 사르고 나서 집필 작업을 시작했다"라며 "부족한 노력을 맑은 정신으로 채우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김호운 작가는 이어 "한용운 선사가 추구하려 했던 그 사상의 실체를 복원하여 재현하는 작업이라 미진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하다"라며 "거대한 ‘만해 사상’에 얼마나 접근했는지 두렵기도 하다. 다만 이 작업은 누군가 한 번은 시도해야 할 숙제고, 그것을 먼저 했다는 데 의미를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호운 작가는 그러면서 "이제 만해 선사의 사상이 제 모양을 갖추고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에게 평화의 빛을 비추리라 기대해 본다"라고 덧붙였다.

김호운 작가는 소설가, 수필가로 197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단편소설 <유리벽 저편>이 당선되어 등단. 장편소설 <표해록(漂海錄)>, <바이칼, 단군의 태양을 품다> 등과 소설집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청소부>, <사라예보의 장미> 등을 펴냈다,

또한 콩트집 <궁합이 맞습니다>(전2권) 등과 에세이집 <연꽃, 미소>, 칼럼집 <나비를 잡는 아이의 마음>, 인문학 저서 <소설학림> 등 작품집 30여 권 출간을 출간했다.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녹색문학상. PEN문학상, 둔촌이집문학상, 대한민국 예술문화대상, 리더스에세이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립한국문학관 자문위원,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이사, 산림문학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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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캐는 '봉성리문화예술창조마을', 채굴의 기억을 문학으로 캐다
(보령=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일제강점기 사금 채취와 석탄 채굴로 이름을 알렸던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가 문화와 문학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 있다. 한때 땅속에서 금과 검은 석탄을 캐내던 이 마을이 이제는 시와 언어, 기억을 캐내는 '금캐는 마을'로 변모하며 또 하나의 문화 발굴 시험에 나섰다. 봉성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금 채취장으로 활용되었고, 이후에는 검은 석탄을 채굴하던 광산촌으로 알려졌다. 마을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땅을 파면 사금이 섞인 모래와 채굴의 기억이 함께 드러난다. 산업화 이후 급격한 쇠퇴를 겪었던 이 마을은 이제 과거의 상처를 지우는 대신, 기억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하는 길을 택했다. 그 중심에는 봉성리문화창조마을 이장이자 시인, 그리고 무형문화유산 석공예 이수자 김유제 시인이 있다. 김유제 시인은 봉성리 마을 전체를 하나의 문학공원으로 조성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현재까지 전국 최대 규모인 300여 기의 문학비를 마을 곳곳에 세웠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비와 문학 조형물이 자연과 어우러져 방문객을 맞는다. 김 시인은 "봉성리는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노동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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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정황은 있다"면서 면죄부… 기본소득당, 류희림 '민원사주' 재수사 촉구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감사원이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자, 기본소득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서영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감사원이 '정황은 확인됐다'면서도 '단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며 "이는 민원사주 의혹 규명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감사"라고 비판했다. 노 대변인은 류희림 전 위원장이 재임 당시 정권 비판 언론에 과도한 제재를 반복하고, 법적 근거가 미비한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졸속 설치하는 등 언론 규제와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민원사주 의혹 역시 "내란정권 하에서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류 전 위원장의 친족과 지인 11명이 이틀 동안 34건의 민원을 집중 제기했으며, 민원 문구의 분량과 표현 방식, 심지어 맞춤법 오류인 '사실인냥'이라는 표현까지 유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 대변인은 "이는 기존 보도보다 축소된 규모일 뿐, 명백한 민원사주 정황"이라며 "그럼에도 감사원이 물적 증거 부족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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