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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언덕에서 다시 울린 서정의 노래, 조대연 시인의 시 '돌아와 태극기 여기 언덕으로'

광복 80주년, 서울광장에 세워진 '태극기 언덕'
조대연 시인 등 국내 유명 시인 작품 전시…市, 광복의 자부심 형상화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서울광장에 특별한 조형물이 세워졌다. 서울시는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중구 서울도서관 정문 앞에서 가로 45m, 폭 5m, 높이 6m 규모의 ‘태극기 언덕'을 시민에게 공개했다. 300개의 태극기 바람개비가 언덕을 가득 메우며, 광복의 자부심과 기쁨을 형상화했다.

이 언덕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층위를 담는다.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쌓여 길이 되고, 시민이 함께 오르는 공동체적 공간으로 확장되며, 언덕 정상에서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은 직접 언덕을 걸어 오르며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혈서 태극기'를 모티프로 한 포토 모자이크 작품을 만난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태극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독립유공자와 서울의 변천사를 담은 사진들이 이어져 있다. 역사와 현재가 한 몸처럼 호흡하는 풍경이다.

이날 전시의 백미는 국내 대표 시인 5명이 참여한 '태극기 시' 전시였다. 그 가운데 조대연 시인의 작품 '돌아와 태극기 여기 언덕으로'는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는 상실의 역사, 번영의 현재, 그리고 화해와 평화를 향한 미래를 시의 흐름 속에 삼단 구조로 담아냈다.

돌아와 태극기 여기 언덕으로

- 조대연 시인

산하를 빼앗기고 봄빛도 잃어
산맥을 넘고 바다를 건너
유랑길을 떠나야만 했던
피눈물 삼킴의 슬픈 날 있었지요

하지만 은둔의 어둠 속에서도
민족의 새하얀 숨결
하나도 잃지 않고
깃발 아니 펄럭일 때 없었지요

지금에는 그런 날 다 이겨내고
번영으로 살아 지나오길
팔십 수에 이르러서
여기 조국 심장의 언덕에
마음 모아 주단을 펴주오니
돌아와 우뚝 서서
태극기 힘자게 펼럭여 줘요

이제는 동족 상혼의 핏빛도
서로 갈림의 편향도
태극 깃발 속에 다 품어 안겨
온전히 치유하고
하나로 돌아와 여기 언덕서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태극기 손에 손에 들고
세계로 만방으로 나부껴 나가야지요

조대연 시인의 시는 역사적 아픔을 다시 호출하며 시작한다. 시의 첫머리는 "산하를 빼앗기고 / 봄빛도 잃어"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나라를 빼앗겼던 식민지 시절,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탈과 고난이 단숨에 독자의 가슴으로 밀려온다. 시인은 산맥과 바다를 건너야 했던 유랑의 길을 그리며, 그 길 위에 흘린 피눈물을 잊지 않는다. 이는 바로 망명지에서, 감옥에서, 산천 곳곳에서 독립을 꿈꾸며 숨죽여 싸운 수많은 선열들의 삶을 상징한다.

하지만 절망의 밤에도 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민족의 새하얀 숨결 / 하나도 잃지 않고 / 깃발 아니 펄럭일 때 없었지요"라는 구절은 태극기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민족의 숨결이자 삶의 의지였음을 말한다. 숱한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지켜낸 저 숨결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일깨운다.

시의 중반부로 가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지금에는 그런 날 다 이겨내고 / 번영으로 살아 지나오길"이라는 대목은 지난 80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세계 속의 나라로 성장한 현재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화합과 치유를 강조한다. "이제는 동족 상혼의 핏빛도 / 서로 갈림의 편향도 / 태극 깃발 속에 다 품어 안겨"라는 구절은 분단과 이념 갈등, 세대와 지역의 균열을 넘어 하나로 돌아가자는 간절한 요청이다. 언덕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를 화합으로 묶는 매개다.

시인은 끝으로 "세계로 만방으로 나부껴 나가야지요"라며, 대한민국이 화해와 평화의 기치를 들고 세계 속에서 당당히 서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시는 단순한 추억의 노래가 아니라, 현재적 요청과 미래적 약속이 함께 담긴 서정적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조대연 시인은 충남 서천의 들녘에서 태어나 바람과 흙을 벗 삼아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삶의 소리를 마음에 담았고, 그 감수성은 훗날 시인의 언어로 피어났다. 고려대학교 공학대학원을 졸업하며 현실적인 삶의 길을 걸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시의 강가에 머물러 있었다.

2003년 첫 시집 <삶의 수채화>를 세상에 내놓은 뒤, 그는 꾸준히 사랑과 삶, 고통과 희망을 노래해왔다.

<사랑의 강>, <달빛 서정을 노래하다>, <슬퍼도 숨지 마>, <내가 꽃이면 너도 꽃이야> 등 다수의 시집에서 그의 언어는 늘 따뜻하고도 단단했다.

눈물 속에서 희망을 찾고, 아픔 속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그의 시편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깊이 어루만졌다.

그는 영랑문학상 작가대상, 풀잎문학상 대상, 통일부 장관상, 농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의 맥을 이어왔다. 현재 (사)한국문인협회와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서울문학문인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후배 시인들과 함께 우리 시의 저변을 넓히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조대연 시인의 삶과 문학은, 결국 한 가지 지향으로 모아진다. 바로 "서로를 품어내는 시"다. 그는 분열과 상처의 시대에 시가 화해의 언어가 되기를 바랐고, 태극기 언덕에 걸린 그의 작품은 그 염원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광복 80주년의 무대에서 울려 퍼진 그의 시는, 우리가 다시금 하나의 마음으로 미래를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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