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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베트남작가협회, 꽝닌서 '제24회 시의 날' 성대 개막

좌담회서 '시의 품격' 집중 논의… "기술은 도구, 시는 인간의 마지막 언어"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플랫폼이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는 시대, 베트남 문단이 시(詩)의 본질과 책임을 다시 묻는 대규모 문학 행사를 열었다.

베트남작가협회는 3일 베트남 북부 꽝닌성에서 제24회 ‘베트남 시의 날(Ngày thơ Việt Nam)’ 기념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올해 주제는 '위대한 바다 앞에서(Trước biển lớn)'. 전국의 시인과 작가, 문학 연구자, 독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학 축제를 넘어, 기술 문명 전환기 속에서 시의 존재 이유와 창작 윤리를 재정립하는 상징적 자리로 평가된다.

바이토산에서 되새긴 문학의 뿌리

행사에 앞서 대표단은 Bài Thơ Mountain(바이토산) 문화유적지에서 헌향 의식을 거행했다. 이곳은 15세기 군주 Lê Thánh Tông(레 타인 똥)이 순방 중 절벽에 시를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장소다.

이를 계기로 꽝닌성은 1988년 베트남 최초로 도(省) 단위 '시의 날'을 시작했고, 이 전통은 오늘날 전국 규모의 대표적 문학 행사로 성장했다.

대표단은 이어 쩐 왕조의 명장 Trần Quốc Nghiễn(쩐 꾸옥 응히엔) 공작 사당을 참배하며 민족적 역사성과 문학적 자긍심을 되새겼다.


"AI는 개입하고 있다"… 시의 존엄성 세미나

올해 행사의 핵심은 '시의 존엄성(Phẩm giá của thơ ca)' 세미나였다. 사회는 베트남작가협회 부회장이자 시인인 응우옌 빈 프엉(Nguyễn Bình Phương)이 맡았다.

토론에는 응우옌 코아 디엠(Nguyễn Khoa Điềm), 후우 틴(Hữu Thỉnh), 당 후이 장(Đặng Huy Giang), 응우옌 비엣 찌엔(Nguyễn Việt Chiến), 호앙 당 코아(Hoàng Đăng Khoa), 부이 꽝 프엉(Bùi Quang Phượng) 등 주요 시인들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소셜미디어와 AI가 확산되는 환경에서 시인의 역할과 책임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응우옌 빈 프엉은 "AI는 더 이상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어디까지를 수용하고, 인간 고유의 체험과 감정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후우 틴은 "한 시인이 쓰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쓸 수 없다"고 말해 시 창작의 비대체성을 강조했고, 당 후이 장은 "군중에 영합하지 않는 용기야말로 시의 품격"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술 발전과 무관하게 시는 인간 정신생활에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시의 존엄성은 ▲내면의 정직성 ▲언어와 시대에 대한 책임 ▲인간적 가치의 깊이를 지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재확인됐다.

시집 <넓은 바다 앞에서: 출간… '확장'의 상징

행사를 맞아 베트남작가협회 출판사와 꽝닌성 인민위원회는 시집 <넓은 바다 앞에서(Trước biển lớn)>를 공동 발간했다. 50인의 작가가 참여해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을 실었다.

광활한 바다는 올해 시의 날이 지향하는 '확장'과 '개방'의 상징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시가 인간 존엄을 지키는 항해를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광산·군부대·학교로… 시민 속으로 들어간 시

이날 오후 시인들은 하람 탄광회사, 제170여단, 지역 학교 등을 방문해 시민들과 직접 교류하고 작품을 낭송했다. 문학을 제도권 행사장 밖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저녁에는 꽝닌 기획·박람회·전시센터에서 등불 축제 형식의 시 낭송회가 열렸다. 공연은 Hồ Chí Minh(호찌민) 주석의 전통시 낭송으로 막을 올렸으며, 시에 곡을 붙인 음악 공연과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문명의 척도는 시의 생명력"


이번 제24회 베트남 시의 날은 축제이자 선언이었다.

베트남 문단은 AI와 디지털 플랫폼이 확산되는 시대에도 시는 인간 내면과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최후의 언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술은 도구일 수 있지만, 시의 존엄성은 결국 인간의 진정성과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다.

문학계 관계자는 "시가 사라지지 않는 사회는 인간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라며 "베트남은 시의 날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문화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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