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월 시인의 「어쩌자고 꽃」은 꽃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류의 시편 63편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서로의 키를 재면서 독자들을 향해서 손짓을 하고 있다.
부실부실하게 갈라진
틈새로 얼굴 내미는 새것들
졸종대는 물소리가 싱그럽다
용천리 이장님의 마을 소식이
온 동네를 점령하고 졸랑대는
강아지 꼬리에 새순이 든다
물길 터진 부천집 농장에
앵두나무가 바람나고
매실나무에 열병이 나니
긴 설움에 울던 시금치가
서슬이 시퍼렇게 성이 나
냉이와 쑥들이 조곤조곤
한나절 시끄럽다
양평의 봄은 화들짝 피어
한바탕 소란스럽기 그지없이
가슴에 봄 타는 객주들을
불러 모아 봄을 지피는
그런 봄
- '그 환장한 봄날' 전문
들로 가는 사람들,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 바다를 향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성대를 통해 들려오는 탁음의 노래 공연에 관객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돈 벌려고 애쓰는 경제적 인물들도, 노숙인도, 갑질에 모진 매를 맞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소시민들도 모두 돌아와 한 번 '꽃'이 속삭이는 혹은 시인이 꽃에게 속삭이는 언어의 마술에 걸려보고 잠시, 영원히 행복해 보라며 손짓을 하는 듯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모래 벌에서 격 없이 놀다가 돌아와 재잘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린 병아리 떼들이 노닐던 풀밭 풍경과도 흡사한 이미지와 시어의 의미들이 가득함을 볼 수 있다.
은월 시인의 이번 시집을 가만히 읽다가 보면, 시인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꽃 순례'(자연 순례, 국토순례, 인간순례)를 나섰는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시는 다른 장르의 글과 같지 않아서 거짓을 고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가식으로는 절대적으로 그 맛이나 생명력을 드러낼 수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첫 시집은 시인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부끄러움의 시학'과도 일맥상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은월 시인은 이 시집을 총 4부(1부 '꽃이 되어야 하는 봄', 2부 '메마르지 않는 여름', 3부 '별과 달과 가을', 4부 '겨울 자화상')으로 구분을 짓고 있다.
1부~3부는 모두가 시인의 눈과 마음과 손끝이 그려낸 글 그림으로써 꽃을 비롯하여 사물의 속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면, 4부에 와서는 비로소 시인이면서도 자연인으로 생애를 맞이하면서 걸어온 시인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꽃을 보든지, 나무와 산과별을 보고 사계절을 향한 애절한 느낌 모두가 곧 시인, 인간의 삶을 유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소곡이라는 점을 놓칠 수가 없다.
여기서 숨어 자던 시인의 신앙고백이 대지위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물을 있게 한 후,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는 그 고백의 면면을 이 시집에서 자연스럽게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문학평론가 이충재 시인은 은월 시인의 첫 시집 「어쩌자고 꽃」의 서평을 통해 "은월 시인의 시를 가만히 보면 꽃과의 사심 없는 '대화'를 깊이 있게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며 "그런데 단순히 꽃을 부르는 그리움이 아니라, 꽃이란 고유명사 앞으로 모든 사물들을 집합시키려는 듯한 의지가 돋보이기도 한다"고 평했다.
이 시인은 이어 "이는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말고 꽃처럼 맑고, 꽃처럼 아름답고, 꽃처럼 순결하고, 꽃처럼 멋을 지니고, 꽃처럼 흐드러지게 생애를 불살라보라는 혹은 절체절명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시인의 간곡한 청과도 같다"며 "이를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고 살기에는 너무 사회가 잃은 것도 많고, 무질서해지고, 망가진 것도 많다는 무언의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월 시인의 시 한 편 한 편을 읽고 있노라면 꽃샘추위에 오돌 오독 떨듯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그러면서 "오월의 초입에 꽃과 신록과 함께 우리네 곁으로 돌아와 꽃의 이름으로 속삭이는 시집 「어쩌자고 꽃」과 같이 '어쩌자고' 이런 모습으로 생애를 맞이하고 마칠 것인가?"라며 "스스로를 향해 항변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들어주면서 유한하고도 길지 아니한 생애를 진실 되고도 의미 있게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용기를 주고, 거짓과 폭력이 없는, 자만과 자해가 없는 더욱이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미덕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며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광규 시인도 이 시집 「어쩌자고 꽃」의 해설에서 "친자연주의자인 은월 김혜숙의 시집 원고를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 필자가 느낀 첫 감정은 개인 서사와 자연 서정이 잘 어울려 풍요로운 시정을 창조한다는 것이다"라며 "그가 시에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을 살펴보면 화초와 수목, 그리고 천지자연 등 자연풍광에서 많은 제재를 가져오는데, 이런 시어들이 독자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평했다.
공 시인은 이어 "이런 시적 방법은 은월이 그동안 시를 읽고 쓰거나 시 외의 활동을 해오면서 발명한 나름의 창작방법일 것"이라며 "그의 시들을 살펴보면 시인이 어려서 화초와 수목, 즉 자연풍광을 많이 경험한 시골 출신이거나, 성인이 되어 서도 나름대로 이런 자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또한 나호열 시인도 이 시집 「어쩌자고 꽃」의 서평을 통해 "은월 시는 선이 굵다. 그에게 포획된 시상(詩想)은 기쁨이거나 슬픔이거나 묵직한 거문고의 울림으로 다가온다"며 "그 둔중한 음률은 또한 이제 막 돋아난 여린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응시하는 새의 몸짓처럼 삶의 희망을 예감하게 안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이어 "섬세한 필치를 버린 시인의 직설 화법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우리가 망설이며 감췄던 침묵의 뇌관을 점화하는 힘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편 본명이 김혜숙인 '은월'이라는 아호는 은월 시인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의 마을 이름으로, 은월 시인은 2013년 계간 《서울문학》으로 등단, 현재 coco Photo grapher, (사)한국문인협회, (사)한국현대시인협회, 구리문인협회, 은방울낭송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시전문지 《시인마을》 문학상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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