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언 시인(1946- )
막차가 떠나고
버스 정류장의 외등도 꺼졌다
나는 어둠과 눈을 마주한 채 체온이 사라진 의자에 앉아 있다
내일 아침 첫차로 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사실, 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기다려 볼 참이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얼마나 메말랐던가
그래서, 차를 타지도 않을 나
그래서 오지도 않을 나를 마중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의 의자를 지키는 중이다
체온이 식어 버린 빈 의자
누군가 버리고 간 차표와
허탈감 몇 조각만이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 감상평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인간성 가운데 하나다. '막차가 떠나고', '버스 정류장의 외등'이 꺼지고, '어둠과 눈을 마주한 채 체온이 사라진 의자'에 그가 '앉아 있다'.
그는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서서 그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비록 '누군가 버리고 간 차표와/ 허탈감 몇 조각만이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할지라도, 그가 외로움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 외로움은 죽음(암과의 싸움) 앞에서 생존의 비밀을 터득해서 얻은 결과물일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리게 한다. 그래서 개인은 외로움의 그릇에 무념무상(無念無想)과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공허 등 다양한 사색의 편린들을 담을 수가 있다.
개인은 자신을 닮은 존재(타자)를 외로움의 방에 세워 본다. 명예와 부와 권력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온정을 나누며 멋있는 인간미가 생동하는 존재를 외로움의 방에 들여 보면 어떨까. 이는 존재로서 살아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맙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 정신재(시인·평론가·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1946년 평북 강계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문덕수, 김종길 선생 2회 추천). 국민대, 서울여대, 대전대 문창과에서 강의. 서울여자간호대학 도서관장 역임. 사단법인 국제PEN 한국본부 제3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 역임. (주)티에스 대표이사 역임. 시문학상, 평화문학상, 영랑문학 대상, 포스트문학대상 수상. 한국시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시문학회 시분과 역임.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역임. 현재 사단법인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 이사장. 시집 <돌과 바람과 고향>, <숨겨둔 얼굴>, <서남쪽의 끝>, <너 더하기 나>, <휘청거리는 강>, <사막 여행>, <당나귀가 쓴 안경>, <백양나무 숲>, <소리사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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