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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창일 시인, "별이 내 몸에 들어왔다"

"대시(對詩)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뜻밖에 튀어나오는 언어의 매력"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몇 사람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시를 쓰는 것을 연시(連詩)라 한다. 옛 선비들이 모여 곡주를 나누며 시를 짓는 것에서 유례를 찾기도 한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은 봄이나 가을, 날씨 좋은 날이면 호수에 배를 띄우고 둘러앉아 연시를 짓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의 멋을 아는 절선(節線)의 모습들이 아니겠는가!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면 사군자를 치면서 연시를 짓기도 했다. 즉석에서 장원을 뽑기도 한다.

이와 달리 둘이서 짓는 시를 대시(對詩)라 부른다. 대시는 일본 시인들에게 보편화 되어 있 다. 한국은 대시 보다는 연시를 줄기는 문화다. 대시는 두 사람의 시인이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과 조지훈이 대시를 통해 만든 '나그네'와 '완화삼(玩花三)'이 대표적인 시다. 시간이 흘러도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재미있는 대시의 한 대목이 있다. 권일송 시인이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볼리비아 기수를 보고 시를 만들었다. 볼리비아는 임원, 선수, 기수를 대표하여 단 한 사람만이 외롭게 출전하였다.

그러기에 수많은 입장의 선수 속에 볼리비아 나라는 단 한 명의 기수만으로 외로운 입장이다. 입장식의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은 볼리비아의 기수에 측은함을 느꼈다. 권일송 시인은 즉석에서 '볼리비아 기수론'이라는 시를 만든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본의 석천달삼(石川達三) 작가는 권일송 시인과 같은 시선으로 볼리비아 기수론의 시에 가까운 에세이를 만들어 신문에 투고한다.

당시 석천달삼 작가는 일본의 문인협회 회장 직함을 가졌다. 아사히 신문 상단에는 올림픽의 개회식 컬러사진이다. 하단에는 석천달삼 작가의 에세이가 실렸다. 두 사람의 대시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이례적이고 매우 우연의 일치다. 권일송 시인의 칼럼집을 보면 석천달삼 작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설명이 있다.

권일송 시인이 석천달삼 작가에게 보내는 '볼리비아의 기수' 연시다.

당신의 국기는 <히노마루>였지만/ 당신의 마음은/ 뜨거운 인간의 내일을 보듬는 <코스모스>였다,// 당신은, 석천달삼-,/ 꽤는 이름 있는 작가였지만/그 작가란 다름 아닌/ 핏줄 얽힌 따뜻한 공감으로써/ 어려운 산과 바다를 헤쳐/인간끼리의 신뢰와 합의의/ 더운 손 닿을 때까지,/ 마음으로 울고/ 손으로 저항해가며/ 결코 우리와 멀리 질시(嫉視)해 가며/ 존재할 수 없는 이름이었음을 / 이제사 깨닫는 나는,//당신이 일본 사람임을/ 슬퍼해서가 아닌/ 나대로의 크나큰 충격적인/ 바위와 철망(鐵網) 앞에 서서 있기 때문이다.//

권일송 시인이 석천달삼 작가에게 보내는 시의 부분이다. 원고지 6장 분량의 장편의 119행의 시이기에 전편을 게재하지 못한다. 권일송 시인의 ’볼리비아의 기수‘의 시를 본 김수영 시인이 시평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경기와 함께 일본의 작가와 한국의 작가가 주고받은 대시는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권일송 시인은 동인지 <신춘시>에 실었다. 그리고 원문을 석천달삼 작가에게 보내진다. 보름 만에 회답이 왔다. 자그마한 소포 뭉치였다. 안에는 <현대문학 대계> 48권으로 되어있는 석천달삼 작가의 석천달삼 3집과 원고지 한 장의 사신(私信)이 들어 있었다.

‘미지의 한국 시인에게서 원고지 16매의 글을 받았다. 그의 체온을 전해 주는 아름다운 격정 그의 성실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언어들, 그러나 나는 자칫 잘못하여 그 핀으로 손가락을 찔리었다. 핀에 악의는 없을 터이고 선의와 친애로써 넘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나의 손가락에서는 이렇게 피가 흐르는 것일까.’

그의 글은 한 편의 시였다. 편지를 보고 핀에 찔리었다는 표현은 일본과 한국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일송 시인의 시에는 일본에 대한 감정도 시가 가지는 모호성과 진실성이 전달되었다.

권일송 시인은 저항 시인으로 평가되는 민족관이 짙은 시인이다. 아무래도 혈기의 권 시인은 ‘볼리비아의 기수’를 보면서도 일본에 대한 미미한 감정이 표출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편지를 주고받은 이후로도 권 시인과 석천달삼 작가와의 대시 형식의 서간(書簡)은 계속되었다.

대시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뜻밖에 튀어나오는 언어의 매력이 있다. 2014년에는 한국의 신경림 시인과 일본의 다나카와 슌타로 시인과 대시집을 만들었다. 일본과 한국은 지금도 긴장 관계 속의 나라다. 순조롭지 못한 정치의 세계를, 다른 문학의 공간에서 차원이 다른 언어로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문학의 멋이다.

두 사람의 시인이 만든 시집은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예담출판, 2014년 1월부터 6월까지 시로 나눈 대화). 출판사는 한일작가들의 대화라는 주제로 시도했다. 지금은, 시의 언어가 사람에게 위로해야 하는 시대다.

같은 하늘의 별은 그대로다. 꽃들도 예전처럼 벙긋이 웃기만 한다. 사람들도 별처럼, 꽃과 같이 그러해야 하는데!

- 최창일 시인(이미지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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