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미래일보) 공현혜 기자 = 한국 시조 문학의 맥을 굳건히 이어온 강인순 시조시인이 여섯 번째 시조집 <화살나무 곁에서>(책만드는집, 2025)를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강 시인이 40여 년 문학의 길 위에서 일구어낸 성찰과 해학, 그리고 삶의 통찰을 집약한 결실로 평가받고 있다.
강인순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시조는 예술이다. 알면서 이루지 못한 오늘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러나 시조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 속에는 평생을 시조와 함께한 문인의 겸허한 태도와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작자의 열망이 교차한다.
새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꽃, 그 너머에' △2부 '화살나무 곁에서' △3부 '굽은 것이 살아 움직인다' △4부 '발효 서설' 등 각 부마다 18편씩, 총 72편의 작품이 묶였다. 일상과 역사,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적 목소리가 교차하며, 단시조는 물론 연시조와 사설시조까지 폭넓은 형식 실험이 돋보인다.
압축과 정제의 미학 속에 담긴 해학과 소통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해설에서 "과거와 현재, 시인과 세계가 잘 소통하고 있다. 지나온 것, 지금 보이는 것, 또 다가올 세상과 시인이 긴밀히 호흡하고 있다"며, "단시조의 정수를 살리면서도 연시조와 사설시조로 나아가는 그의 시도는 짧은 시 본디의 맛을 깊게 우려내는 과정"이라고 평했다.
특히 강인순 시인의 시조는 해학적 풍류와 현실 비판이 어우러져 통 큰 울림을 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표제작 '화살나무 곁에서' - 삶의 긴장과 희망의 비유
시집의 표제작 '화살나무 곁에서'는 화살나무 새순을 매개로 한 시대적 은유가 돋보인다.
시인은 "제때 맞추지 못한 숱한 과녁 향하는 듯 / 또다시 팽팽한 봄날 시위를 매만지네"라고 노래하며, 시대의 과녁을 향한 열망과 분투를 담는다. 나아가 "무수히 쏴대는 화살 닫힌 창을 뚫고 있다"는 구절에서는 닫힌 현실을 뚫고 나아가려는 문학의 힘과 인간의 의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교육자에서 문인으로, 문단의 중심에서
195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강인순 시인은 1985년 <시조문학> 현상공모 당선작 '서동 이후'로 등단했다. 이후 시조집 <서동 이후>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안동 경일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그는 교육자이자 문인으로서 두 길을 함께 걸어왔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다수의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제2회 설록차우리시문학상을 시작으로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추강시조문학상, 안동예술인상, 경상북도문화상,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한국문학인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시조 문단에서 독자적 위치를 확고히 했다.
또한 '오늘' 시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안동문인협회 회장, 경상북도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격월간 문예지 <사랑방 안동>의 편집주간으로 지역 문학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40년의 길, '시조는 여전히 현재형'
강 시조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은 그가 걸어온 길이 단순한 회고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임을 증명한다. '굽은 것이 살아 움직인다'라는 시집의 한 부제처럼, 그는 굽은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문학적 창조력을 시조라는 전통적 형식에 담아낸다.
시조 문단에서는 이번 시집이 강인순 문학 세계의 확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조가 지닌 압축과 절제의 미학 속에서 그는 유머와 풍자, 시대적 울림을 놓치지 않는다.
"길 없는 길에 나서야 길이 된다"는 문학의 오래된 명제를 실천하며, 강인순 시조시인은 다시금 우리에게 시조가 가진 깊은 울림과 생명력을 일깨워준다. 그의 <화살나무 곁에서>는 그 울림의 증거이자, 앞으로 또 다른 길을 열어갈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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