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재화 시인(1951- )
비틀대며 여기까지 왔지만 많은 주먹을 맞았지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나 여기 서 있다! 심판도 관중도 내 편이 아니지만(야유가 차라리 내겐 힘이다) 수없는 터널을 지나 예까지 왔는데 누가 수건을 던지라 하느냐 마지막 라운드에 타월이라니? 비록 체력은 바닥났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말해보라 내 주먹이 허공만 가른 건 아니잖으냐 가끔은 카운터펀치도 날렸지 않느냐 그러니 내게도 박수를 보내다오 박수까진 몰라도 끝까지 지켜는 보아다오 여기서 흰 수건 던지면 누가 내 대신 링에 오르겠느냐 네가 아무리 주먹을 휘두르고 일방적 응원을 받아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나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네가 나를 이긴다고?) 좋아하지 마라 너의 손이 올라가기 전 나는 링을 내려갈 것이다 축하는 해주겠다 나를 이만큼 버티게 해준 링사이드의 특별관중과 모처럼의 찬스에서 나를 제지한 레퍼리에게도 목례는 하겠다 그러나 잊지 마라 네가 승자라면 나도 승자다!
■ 감상평
그에 의하면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삶의 가치가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꿈에 도전하였는가 하는 것이 승리의 기준이 된다. 관객들은 경기에서 승자에게만 환호를 보낸다.
그러나 패자도 존재 가치가 있다. 열심히 싸우는 패자가 없으면 그 경기가 얼마나 싱겁겠는가.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유명세를 타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평범한 개인에게도 존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개인으로 태어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돌보지 않으면, 종족이 보존되지 못한다. 신은 인간에게 애정의 조건도 부여하고 부모로서의 심성도 부여하였으며,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의지도 주었다.
그걸 소중하게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는 그 개인의 몫을 자기 관리를 하는 데 사용한다.
"나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네가 나를 이긴다고?” 그의 자존심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는 관객의 시선에서 눈을 돌려 사람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려 한다. 남들이 물신주의에 휘말려 명예와 부와 권력에 눈이 어두울 때, 인간미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잊지 말라 네가 승자라면 나도 승자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살아갈 존엄할 권리가 있다. 그래 잊지 말자. "네가 승자라면 나도 승자다!"
- 정신재(시인·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1951년 충북에서 출생. 대전고(大田高)와 성균관대(成均館大) 및 같은 대학원 졸업. 1984년 <현대문학> 2회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으로 <도시(都市)의 말> <우리 깊은 세상> <전갈의 노래> <먼지가 아름답다> 등이 있음. 기독교문학상, 성균문학상, 다산금융상(茶山金融人賞)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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