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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하순명 시인의 '살구꽃 그림자'

'고택의 서까래가' 된 살구나무가 어머니로 다가온다

살구꽃 그림자

- 하순명 시인

겨울 한복판에서 살구나무를 만났다
숯댕이처럼 거무죽죽한 나뭇가지는 냉한 하늘을 이고
오소소 떨고 있다

그에게 말했다
꽃이 다 가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눈발 날리는 강 언저리에서
훈풍의 봄철 잠깐 꽃으로 살았을 뿐
꽃잎 분분이 떨구고
주홍빛 열매를 키우고 익히느라 숯댕이 같은 손마디
어깨 품이 고택의 서까래가 되었지만

그 봄철 향긋한 얼굴
내 눈에 들어앉은 형상 지워지지 않는 한
당신이 영영 가버렸다고 할 수 없듯이

가버린 어머니가 내 가슴에
아직 꽃으로 피어있듯이.

■ 감상 / 이혜선 시인

언제까지나 꽃으로 내 가슴에

시인은 온 세상이 얼어붙어, 살아서 생기 있는 것이라곤 만날 수 없는 겨울 한복판에서 살구나무를 만난다. 살구나무는 그의 일생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키우던 봄날의 젊음이라곤 아예 없었던 것처럼 '숯댕이처럼 거무죽죽한 나뭇가지'로 바람맞이 찬 하늘을 이고 떨고 서 있다.

눈발 날리는 강 언저리에 서 있는 화자에게는 '주홍빛 열매를 키우고 익히느라 숯댕이 같은 손마디'에 '고택의 서까래가' 된 살구나무가 어머니로 다가온다.

지난 늦가을에 이승을 하직한 어머니, 전쟁이 앗아간 젊은 남편의 빈자리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6남매 자식의 배를 채워주고, 더 나아가서 정신의 배까지 채워주기 위해 밥 한 숟갈 편히 입에 넣지 못하고 밭을 매고 밤 새워 재봉틀에 매달리던 어머니!

그는 누구에게 라 할 것 없이 혼잣말을 한다.
"꽃이 다 가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에 들어앉은 형상, 내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이 지워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다.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지만, 우리들 가슴에 언제까지나 살아나는 '꽃으로 피어' 새봄마다 우리 가슴에 새로운 꽃을 환히 피워주실 것이다. 새 희망이 되어 돌아오실 것이다.

■ 하순명 시인

전남 진도 출생. 광주교육대, 상명여자사범대, 중앙대 교육대학원 졸업
1998년 <문예사조> 등단.
시집 <밤새도록 아침이 와도>, <나무가 되다>, <산도(産道)>, <그늘에도 냄새가 있다>, <물의 입 바람의 입>과 교단 에세이 <연둣빛 소묘> 등이 있다.
한국시문학상, 한국문인협회 서울시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세계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서초문학상, 광주교육대학 자랑스러운 동문상 등 수상.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장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이혜선 시인

경남 함안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및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81년 <시문학> 추천. 문학평론가.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神 한 마리> 등이 있으며,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아버지의 교육법> 등이 있다.
윤동주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문학비평가협회 평론상 등 수상. 세종우수도서 선정(2016).
동국대학교 외래 교수 역임. '현대향가' 동인. 유튜브 '이혜선시인 TV' 운영 중.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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