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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윤 시인, 첫 시집 <유리병 속의 팔레트> 출간

허형만 시인 "정서윤 시인은 시 쓰기와 사유의 힘"…'존재의 의미를 캐는 사유의 힘과 시대의식'
한상훈 문학평론가 "지연의 작은 움직임에서 우주적 질서 포착…시적 발상이 신선"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정서윤 시인이 최근 첫 시집 <유리병 속의 팔레트>를 현대시학사(현대시학시인선 140)를 통해 출간했다.

정서윤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관광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과(석사)를 졸업했다, 2019년 <월간 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존재의식과 성찰을 극대화 시킨 시 '행복의 출처', '생각나는 사람으로', '호수', '유리병 속의 팔레트'가 추천시인상에 당선 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당시 한상훈 문학평론가는 정서윤 시인의 신인상 심사에서 "정서윤은 시인으로서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성찰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라고 평하며 동시에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서 우주적 질서를 포착해낸 정서윤의 시적 발상이 신선하다"라고 칭찬했다.

정 시인은 또한 2023년 <여행문화>에서 중세 성벽 중 유일하게 현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코스타 브라바 해안의 작은 마을 토사 데 마르(Tossa de Mar) 기행기로 수필 등단했다.

정서윤 시인은 그동안 공저로 <눈꽃바람 벗어나기>, <인생은 눈부신 선물>, <혼자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외 4권을 비롯하여 테마시집 <우리동네>를 펴냈다.

현재 서울시인협회와 율동시회, 현대작가회 회원으로 여행작가 및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서윤 시인의 첫 시집 <유리병 속의 팔레트>에는 제1부 '어느 날엔', 제2부 '도도한 물결은 한 길로 흐른다', 제3부 '그림과 시', 제4부 '어느 시인의 노래' 등 총 제4부로 구성돼 있으며, 60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서윤 시인은 "길을 걷다가 눈을 감았다. 나의 관념이 가장 평등한 맹인의 눈으로 보이길 바라는, 어떤 날엔"이라며 짧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 책의 첫 장을 열었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 길을 나섰다
   지름길에서 에움길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진창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 아래로 흐려지는 달빛
   휘어진 그림자를 놓아 눈을 감는다
   검은빛에서 흰빛으로
   흰빛에서 무지갯빛으로
   세상은 빛나고

   무언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아우성으로
   바다 저편에서 무한 세상으로
   수표면의 무수한 언어들의 조합이
   밀려오다 부서지고
   부서졌다 밀려오는
   백지 위의 하얀 물거품이 되어 사리져갔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어둠 속 심해어의 눈처럼
   흩트리지 않는 시선과 무너지지 않는
   공감각의 조각들로 꿰매진
   섬세한 세포 비늘 한 가닥이다

- 본문 중 정서윤 시인의 '유리병 속의 팔레트' 표제시(標題詩) 전문

허형만 시인(목포대학교 명예교수)은 이 책 해설 '존재의 의미를 캐는 사유의 힘과 시대의식'에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 찰학자로서 우리는 하이데거를 기억한다"라며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은 1979년에 소개된 <하이데거의 시론과 시문>(전광진 역, 탐구당)을 통해 신선함을 선사했다"고 했다.

허 시인은 이어 "존재론의 입장에서 인간존재를 다루고 있는 하이데거는 우리가 주지하듯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규정함으로써 우리 시인들에게 사유의 폭을 더욱 확장하는 힘을 주었다"라며 "시인은 시를 쓴다. 시 쓰기에는 필히 사유의 힘이 작용한다"라고 했다.

허 시인은 그러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색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시의 본질에 접근한다”라며 "그러기에 '우리들이 언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우리들을 가진다'라고 말하는 하이데거는 휠덜린. 리케, 트라클, 게오르게의 작품을 심도있게 분석했음을 떠올리며 이제 우리는 정서윤 시인의 시 쓰기와 사유의 힘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크리라 본다"라고 했다.

      빛바랜 유리창이 투명한 거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누군가 출근하는 엔진 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알람처럼 들려왔다 묵은 때를 씻겨내듯 밤새 널브러진 거리를 쓸어내는 소리에 반사체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서늘한 바람이 새벽을 감도는 어떤 날엔 뿌연 창밖을 보고서야 집으로 향했다

      겨울을 넘기며 감각은 기억이고 시간이 됐다 열망은 소망보다 진지했으며 습관은 익숙함으로 안전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노트북과 책을 든 학생들은 하나둘 카페에서 사라져갔다 이제 남겨져있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새벽에 충실했다 버텨야 한다는 관님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했다 어느덧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이 책장 속에서 책갈피를 찾듯 내 하루의 서표가 된 것이다

      검은 페이지처럼 어둑한 어제를 있어주던 너 그늘진 바람이 불어오는 오늘 같은 날 감싸안듯 흰 종이들을 메우던 너의 품이 또 다시 살아나 조용히 너에게로 간다

- 본문 중 정서윤 시인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전문

허형만 시인은 본문 중 정서윤 시인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에 대해서 "이 시는 정서윤 시인이 밤을 새워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가 '빛바랜 유리창이 투명한 거리를 통과하고 있'는 시간, '누군가 출근하는 엔진 소리'와 '묵은 때를 씻겨내듯 밤새 널브러진 거리를 쓸어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시 말해 삶의 한 부분을 견디는 과정을 담담히 그러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허 시인은 이어 "이러한 삶을 견디는 한 부분 중에는 '서늘한 바람이 새벽을 감도는 어떤 날엔/ 뿌연 창밖을 보고서야 집으로 향하곤' 하기도 한다"라며 "자신을 챙기고, 자신을 다독이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감각은 '기억이고 시간이 됐다'라고 고백한다"라고 했다.

허 시인은 계속해서 "'어둠이 짙어질수록' 카페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이제 남겨져있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외로움이 엄습한다"라며 "이 외로움은 정서윤 시인에게 '버터야 한다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라고 진단했다.

허 시인은 "시간의 무게를 시인은 '관념'이라 호칭하며, '버텨야 한다는 관념은 고통'임을 실토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사랑했다'라고 말한다"라며 "시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통은 '너'로 치환되어 시인으로 하여금 외로움이라는 존재 의식을 강하게 살려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허형만 시인은 그러면서 "너와 나, 고통이라는 '너'를 극복하면 나에게 얻어지는 자유가 있을 터, 그러나 그 자유도 정서운 시인에겐 '떠돌지 못하는 영혼/ 안으로 안으로 침묵하는/ 소리없는 외침/ 너를 갖는다는 건/ 내 안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자유 1')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너'로 하여 분명해짐을 알 수 있다"라고 평했다.

i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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