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드라마에서 그려진 '천국'은 유유히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바람 없는 날의 햇살, 수북한 구름을 안은 하늘과 들꽃으로 가득한 골목, 단아한 주택들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엔 고요한 일상과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운 이들과의 재회도 가능했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삶과 닮아 있었다.
드라마는 사후 세계를 상상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과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무너짐 대신 상상과 희망으로, 절망 대신 견뎌냄으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최근의 현실과 맞물리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이 이어진 채,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됐다. 또 한 번 역사의 분기점 앞에 선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나라'를 묻고 있다.
나는 지난겨울을 잊지 못한다.
권력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자가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 민주주의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법 위에 군림하려던 그 시도는, 이 나라가 지닌 민주주의의 뿌리를 한순간 흔들었다.
우리는 그 위기를 '침묵하지 않음'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지금도 불안은 남아 있다.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가?"
"여성이 주체로서 존중받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는 사회는 가능하지 않은가?"
어떤 후보는 '표현의 자유'를 말했지만, 그것은 혐오의 언어로 포장된 폭력이었다. 그의 말은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였고, 나에게도 그랬다. 여성을 향한 존중이 결여된 자가 권력을 잡게 된다면, 그 속에 숨겨둔 폭력성과 독단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존중받아야 하며, 언어의 윤리는 정치인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그런 점에서, 말의 무게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길 수 없다는 확신이 더해지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의 질서를 그리워하며,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복종을 선택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삶은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의 품 안에서만 가능하다.
히틀러가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80%가 넘는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
투표율이 곧 민주주의의 승리는 아니다. 역사를 바르게 읽지 못한 다수의 선택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나는 투표용지를 손에 들고 있다. 그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경계하지 못했던 고통의 기억을 아직 치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희망한다. 이 한 표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 되기를.
윤리와 존엄, 상식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이끌 후보에게 향하길 바란다. 침묵하지 않고, 기억하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이 사회의 유권자들이 이 나라를 천국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를.
이제는 그 질문에, 한 표로 대답할 때다.
"나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현재 (사)한국문인협회,(사)국제PEN한국본부,(사)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본부(UPLI-KC) 등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울림>과 <문학의 뜨락> 등 동인지에 작품을 기고하고 있다. 세종여성플라자 새봄기자단과 뉴스피치 시민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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