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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가보훈처 2016년도‘이달의 독립운동가’발표

‘34번째 민족대표’스코필드 박사 등 13인 선정

(서울 = 동양방송) 고진아 기자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6년도이달의 독립운동가’13인을 선정하고 그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는 1월 조희제, 2월 한시대, 3월 스코필드 박사, 4월 오영선, 5월 문창학, 6월 안승우, 7월 이신애, 8월 채광묵·채규대 부자(父子), 9월 나중소, 10월 나운규, 11월 이한웅, 12월 최수봉  등 13명의 독립운동가가 선정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된 2016년도 독립운동가들은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의 심의와 관련기관의 검증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매월 한 인물씩 본보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1월의 독립운동가는 '염재야록(念齋野錄)을 통해 의병장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조희제(趙熙濟) 선생(1873.12.10~ 1939.1.9)으로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애국장을 치렀다.


그는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목숨 걸고 기록했다. 한말 의병장들과 애국투사들의 독립운동 행적 자료들을 수집해 염재야록을 저술했다. 1938년 일제 경찰에 구속되면서 원고는 압수당하고 1939년 일제 경찰의 잔혹한 고문과 단발 강요에 결국 자결, 순국했다.

 

2월의 독립운동가는 미주 대한인국민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한시대(韓始大) 선생(1888.9.18~ 1981.5)이며 황해 해주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그는 미주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이끌었고 1936년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위원을 지냈으며 1937년 한국광복진선 결성에 참여했다. 1940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집행위원장을,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위원 및 위원장을, 1944년 주미외교위원부 부위원장을 맡았다.

 

3월의 독립운동가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石虎弼) 박사(1889.3.15~ 1970.4.12.)이며 캐나다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제암리 학살현장 등 1운동 당시 일제의 잔혹상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로 1969년 한국에 영구 정착했으며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한국인의 마음을 발견한 ‘34번째푸른 눈의 민족대표로 캐나다 출신 의학자이자 선교사이며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내한해 1919년 일제의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 현장을 촬영, 국제적으로 반일 여론을 조성했다.

 

4월의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 오영선 (吳永善)선생(1886.4.13~ 1939.3.10)이며 경기 고양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화합을 외친 인자한 국무위원으로 우리는 독립운동가라는 의미 앞에서는 다 동지입니다"라고 동료들을 독려했다. 1914년 이동휘(장인)와 함께 만주 길림성에서 동림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20년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1924년 임시정부 법무총장, 상해 교민단의사회 학무위원, 1927년 임시정부 외무부장, 1928년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다.

 

5월의 독립운동가는 국민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만주독립군 문창학(文昌學) 선생

(1882~1923.12.20)이며 함북 온성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그는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다시 태어난 독립군이며 19193.1운동에 참가했고 1921년 대한군정서 김학섭 등과 신건원 주재소를 공격했다. 일경 사살 및 일제 기관을 파괴하고 이후 중국 훈춘 일대 일경 공격과 밀정을 처단하는 등 활동을 하다 1921년 일경에 체포돼 1923년 사형, 순국했다.


6월의 독립운동가는 을미의병에 참가 해 충주성 점령에 앞장 선 하사 안승우(安承禹) 선생(1865.9.9~ 1896.6)이다. 그는 경기 양평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그는 '조선인의 심장이 있다면 사람으로 죽을지언정 짐승으로 살 수 없다'라는 신념으로 1895년 제천 이필희 의진 군무도유사(軍務都有司)로 활약했고 단양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이후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진을 재편성해 전군장과 중군장으로 활약하던 가운데 1896년 충주성 점령 후 제천에서 전투 중 순국했다.

 

7월의 독립운동가는 여성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이신애(李信愛) 선생(1891.1.20~ 1982.9.27)이다. 그는 평안북도 구성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그는 '망국에 견준다면 한 여인으로서 겪은 치욕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1919년 서울 남대문역에서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를 적극 지원했다. 같은해 10월 대동단에 입단해 동단이 주도한독립선언서에 여성대표로 서명했다. 19201운동 1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일제의 잔혹한 악형에 시달렸다.

  

8월의 독립운동가는 홍주성 전투에서 산화한 부자(父子) 의병 채광묵(蔡光默)과 채규대(蔡奎大) 선생이다.

채광묵 선생(1850.7.15~ 1906.4.8.)은 충남 청양 태생으로 1977년 독립장을 치렀다. 채규대 선생(1890 ~1906.4.8)은 1992년 애국장을 치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홍주로 귀향해 의병을 모집했고 1896년 안병찬과 함께 홍주성에서 창의, 남면 소모관으로 파견됐다. 1906년 홍산에서 민종식 등과 거의, 참모장으로 아들 규대와 참전해 홍주성 전투에서 부자가 함께 전사했다.

 

9월의 독립운동가는 나비 장군으로 불린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나중소 장군(1867.4.13~ 1928.8.18)이다. 그는 서울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이며 1919년 서일·김좌진 등과 대한군정부(북로군정서)를 조직했다. 1920년 사관연성소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교성대 대장을 수행했고 같은 해 10월 북로군정서 참모장으로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본 기병대 1개 부대를 궤멸시켰다. 19253월 신민부 참모부위원장 겸 검사위원을 수행하기도 했다.

 

10월의 독립운동가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애환을 영상화 한 영화감독 겸 배우인 춘사 나운규 선생(1867.4.13~ 1937. 8.9)이다. 그는 함북 회령 태생으로 애국장을 치렀다.


그는 1920년 대한국민회 소속이며 일제 나남(羅南) 사단본부와 회령 수비대 간의 교통을 차단하고자 회청선(會淸線) 7호 터널 폭파 등을 추진한 만주 독립군이다. 영화 '아리랑'이 개봉한 시점을 기념해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1992년 이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 301분 중 첫 영화인이다.

 

11월의 독립운동가는 영국에서 구국 외교를 펼치다 자결로 애국을 선택한 이한응 주영공사(1874.10.30~ 1905.5.12)이다. 그는 경기 용인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영국에서 구국 외교를 펼치다 자결로 애국을 선택한 외교관이며 1901년 영국 벨지움양국주차공사관 3등 참서관, 1904년 주영 서리공사를 지냈다. 1905년 주영공사관 철수를 통보 받자 영국 정부와 제외국(諸外國) 공사들을 대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하다 1905년 런던에서 자결, 순국했다.

 

12월의 독립운동가는 밀양경찰서에 의열의 폭탄을 던진 최수봉 선생(1894.3.3~ 1921.7.8)이다. 그는 경남 밀양 태생으로 독립장을 치렀다.


1913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남만주로 망명, 동지들을 규합했다.1919년 의열단원으로부터 폭약과 제조기를 입수, 제조했고 192012월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 1921년 사형, 순국했다.

pakje77@dm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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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인총연합회 제6대 회장에 노수승 시인 취임
(대전=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대전문인총연합회(이하 대전문총)가 제39차 정기총회를 통해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대전문총은 29일 대전 시내 한식당 '바다로'에서 회원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신임 회장 인준을 비롯한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전년도 주요 업무 보고와 정관 개정, 2026년도 사업 계획 발표도 함께 진행됐다. 대전문총은 1990년 창립 이래 회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독특한 선출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문단 원로와 고문들로 구성된 회장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를 엄선해 추대하고, 이를 총회에서 회원들이 인준하는 이른바 '교황 선출 방식'이다. 이날 최송석 고문의 회장 인준 경과보고에 따라 참석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노수승 시인을 제6대 회장으로 인준하며, 대전문총 특유의 화합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 6년간 대전문총을 이끌어온 제5대 김명순 회장은 퇴임사를 통해 "열정을 바쳤던 회장직을 내려놓고 다시 평범한 문학인의 자리로 돌아가 순수한 창작의 열정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그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소외되는 AI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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