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미증유가 무엇이죠?", "기름 종류의 이름 아닌가요", "아니면 중국과 관련된 단어인가요?"
장난 섞인 대화 같지만, 한자어에 대하여 의문의 질문이다. 미증유(未曾有)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의 한자어다. 한글세대에게는 다소 어려웠던 한자어로 보인다.
시인들이 멘토로 생각하는 김수영 시인, 미당, 백석 시인의 시집에도 한문이 더러 있는 편이다. 지성적인 시인이라고 평가되는 세분의 시인을 사례로 드는 것은 그분들이 뚜렷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수영 시인의 경우, 민음사에서 1981년 김수영 전집을 펴내며 시인이 사용한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만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고쳐 펴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묘정(廟庭)의 노래’는 한문이 많다. 같은 한자어에도 시전(矢箭)과 같은 한문은 흔히 쓰는 글이 아니다. 날아가는 화살을 뜻한다.
시를 공부하는 문창의 학생은 다소 생소하다. 민음사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참작, 22년이 지난 2003년 김수영 전집의 표지부터 한글로 펴내게 되었다.
이후에도 개정판에서는 독자에게 보기 편하게 해설을 곁들기도 했다. 한글과 한문의 사용은 시인에게 하나의 편두통과 같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보면 한문의 뜻이 어렵거나 고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어를 하나씩 찾아가며 시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수영 전집의 재편집 편찬은 시인과 학자들이 참여하여 논의하고 결론에 도달한다. 서지 학자 오영식 선생은 김수영 시인의 '묘정의 노래' 발표 본을 제공하여 '고요히'를 '고오히'로 수정하는 노력도 알게 한다. 아무래도 시인의 의도한 언어를 감 안, 책을 펴내는 것이 예의다.
이렇게 김수영 전집을 한글화하고 새롭게 엮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는 편집 평이다.
시를 배우는 시도반에게 황금찬 시인은 영어와 같은 외래어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하는 습관을 권한다. 우리글이 한문과는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쓰다 보면 우리글의 빛이 나는 윤을 알게 한다.
봄을 부르는 '병아리 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나리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병아리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 동요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봄의 묘사가 아름답다.
봄에 내리는 비는 '다디단 단비'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의 묘사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것은 없음과 있음의 역설이다. 같은 말을 하여도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말이 그 사람을 식자라 칭하기도 한다.
이기주 작가의 글에서는 "말도 의술(醫術)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의사는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환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는 호칭도 사용하지 않는다. 의사는 사전 질문지를 통하여 전직이 무엇인지 알아둔다. 병마와 싸우려는 환자에게 전직의 직함을 불러줌으로 환자는 힘깨나 쓰던 시절로 돌아가 현역이 된다. 의사는 청진기나 주사로 치료만을 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와 대화를 통하여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잃게 하여 준다. 환자라는 단어는 환자를 더 환자로 만든다.
의사는 병마와 싸우는 환자에게 의지를 굳게 다지게 하는 말의 의술을 발휘한다. 입은 닫을 수 없고 혀는 감추지 못한다. 입술의 근육을 써야만 하는 것이 사람이다. 필요 이상의 말을 하는 것을 다언증 이라고도 한다.
충남의 여천 군에는 언총(言塚)이라는 말 무덤이 있다. 달리는 말이 아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파묻는 무덤이다. 언총은 한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마을에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으로 시작한 쓸데없는 말,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었다. 말 장례를 치른 셈이다. 신기하게도 예천군의 언총이라는 말 무덤이 있는 마을에는 언쟁이 수그러졌다 한다.
방식 독일 명장은 '말은 생각의 이불'이라고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은 책은 나의 담요이며, 훈훈하게 하는 모닥불이다. 때로는 나를 호되게 두들기는 몽둥이가 되기도 한다. 말과 글은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생명 사상가를 만든다.
- 최창일 시인(이미지문화학자, '시화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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