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사용한 시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다. 조선 시대는 양반이 주로 사용했다. 동양권에 사용되던 참기름은 한류 바람이 불며 유럽의 나라들까지 식재료로 확산, 활용되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참기름에 대한 인식은 식재료를 넘어 진실의 차원으로 불린다.
'참 군인', '참기름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참기름이 던지는 뉘앙스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완성하는 조미료의 이미지만은 아니다. 깊은 열과 압력을 견뎌낸 끝에 비로소 향기롭고 맑은 기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참기름의 본질이다.
겉껍질을 태우고 불순물을 걸러낸 후, 한 방울씩 짜내는 그 정성스러운 과정은 진실하고 순수한 것만 남기려는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
반면 '참 군인'이라는 말은 어떤가. 병영 안팎의 풍경 속에서 수없이 소비되는 '군인'이라는 단어가 '참'이라는 접두어 하나만으로 단번에 무게를 얻는다. 참 군인은 단순히 계급장을 달고 지휘하는 이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향한 충성과 헌신, 자신의 안일보다 공동체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정신,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갖춘 존재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참'이라는 말을 굳이 덧붙여야 하는가. 세상에 진짜가 드물기 때문이다. 4월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사태 내란 우두머리 혐의 두 번째 재판에서다.
'국회에서 의원을 끌어내라'라는 윤 전 대통의 지시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증인으로 나온 군 간부들의 증언에 대해 "가능한 지시인가"라고 반박하자 군 간부들은 "불가능한 지시인데 왜 지시했나"라고 맞받는 장면이 나왔다.
김형기 특수사령부 1 특전 대대장은 "저는 사람에게도, 조직에도 충성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게 제 임무"라고 말했다.
방청한 시민들은 김 대대장의 말에 '참 군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날의 뉴스는 김 대대장의 증언(발언)은 감동의 뉴스로 전달 됐다. 이날의 법정에서는 참 군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렇다. 진짜 참기름은 시장에 넘쳐나는 싸구려 기름과 구별되기 위해 '100% 참깨 착유'라는 말이 필요하다. 진짜 군인도 말로만 애국을 외치는 이들과 달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군인을 군인이라 부르지 않고, '참 군인'이라 부르며 진짜의 의미를 되새긴다.
참기름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뜨거운 불에 볶아야 하고, 으깨고 짜내야 한다. 그 과정을 견딘 깨에서만 깊은 향이 우러난다. 참 군인 역시 마찬가지다. 극한의 훈련과 위기, 내면의 갈등과 유혹을 견뎌낸 사람만이 진정한 군인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 물리적 전투를 넘어 정신의 전쟁을 이겨낸 이만이 참 군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둘 다 공통으로 본질을 추구한다. 불순물을 걷어낸 자리에 진짜가 남는다. 오늘날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 역시 ‘진짜의 부재’에 있다. 말은 많지만, 실천은 없고, 이름은 있지만, 정신은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남겼는가. 참기름 없이 조리된 음식이 밍밍하듯, 참 정신없는 조직은 절대 향기롭지 않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진짜 군인, 참된 헌신, 깨끗한 의지 없이 운영되는 국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참군인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마지막 맛을 결정짓는 참기름과도 같은 존재다. 조리의 끝, 마지막 한 방울이 요리를 완성하듯, 참 군인의 존재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말과 이미지에 휘둘리고, 본질보다는 포장에 열광한다. 하지만 결국 시대를 지탱하는 것은 참기름처럼 끝까지 자기 향기를 지키는 존재들이며, 참 군인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임무를 다하는 사람들이다.
정제되지 않은 말, 훈련되지 않은 정신, 위장된 충성심이 만연한 오늘, 우리는 묻는다. 나는 참기름인가? 나는 참 군인인가? 사회도, 교회도, 정치도, 군대도, 결국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끝까지 남는 것은 오직 '참'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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