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절친이 몇이나 되세요?" 학인의 물음이다. 절친, 다섯 명이면 잘 산 인생이란다. 학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휴대 전화기에 저장된 숫자를 본다. 600여 명이 저장됐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절친은 아니지 않은가. 학인은 로빈 던바(Robin Dunbar·옥스퍼드대) 교수가 30년간 분석한 자료를 들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참고로 던바 교수는 '사랑에 관한 연구'와 같은 흥미로운 저서의 심리학자다. 던바 교수는 인간이 주저 없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회적 뇌'는 150명이라 한다. 150명이라는 수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의 크기를 가리킨다. 피그미족이 이루는 공동체는 150명이다. 피그미족을 예로 든 것은 신체가 작은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종족을 하나의 사례로 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조사한 결혼식의 하객은 평균 144명이었다. 수천만 명이 도시에 모여 살지만, 인류가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크기는 일정한 수준이라 설명한다. 던바 교수의 분석은 친밀이란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의 크기를 친밀함에 따라 구분이 된다. 우정의 원리라는 가설로 절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국 시단에 영글진 시(詩)의 씨앗은 단연 이규보(1168~1241)에서 시작된다 해도 좋다. 이규보 시인 하면 술의 끝에 시가 흐르고 있다. 열한 살에 숙부가 장난삼아 시를 짓게 하면서 ‘지(紙)’자를 운(韻)으로 주었다. 옛 선비들은 시의 운을 주는 것이 보편이었다. '기나긴 종잇길에 모학사(붓)가 가고/ 술잔의 마음은 항시 국선생(누룩)에 있다.' 종이에 연상되는 것은 붓이다. 거기에 이어지는 행(行)에 술잔을 내세운 것이 섬 듯, 혀를 내두를 시성(詩聖)이 아니런가. 분명 11세의 소년으로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숙부는 물론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규보의 집안은 하인이 80여 명이라는 것을 보면 여유 있는 집안이다. 규보 시인이 11세에 술맛을 알았다는 것은 생물학적 논리로 규정하지 말자. 시성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이 시인의 주량과 술을 즐긴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다. 이 시인이 술을 좋아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시편에는 '시의 즐거움', '술의 즐거움'이 따라다녔다. 이규보는 2만 수의 시를 남겼다는 평론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유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술은 시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이태석 신부가 배추밭을 일구고, 김근태 의원이 옆에서 보고 있었다." 학인의 꿈 이야기다. 꿈인즉, 이태석 신부가 멀리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가난(家難)만 있고 부유(富有)가 없다. 빈부격차도 없다. 톤즈에서 주민을 위해 헌신하던 이태석 신부의 기록 영화다. '울지마 톤즈' 영상을 보다가 잠들어 꾼 꿈이 아닌가 싶다는, 부연설명에 이해가 됐다. 그런데 김근태 의원의 등장은 무엇이냐 물었다. 학인도 밋밋한 꿈이라며 피식 웃는다. 다만 이태석 신부와 김근태 의원같이 선하디선하고 소명의식이 뚜렷한 선인(善人)이 천국에서도 공동체를 만들어 김치를 밥상에 올리는 모양이라는 해석이다. 김근태 의원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군사정권하에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당했다. 후일 의원이 됐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저세상 사람이 됐다. 이태석 신부는 선교지 톤즈에서 성당보다 학교를 먼저 짓고 교육과 의료 활동을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보지 못한 두 가지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손바닥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무수한 밤하늘의 별‘과 ’손만 내밀면 금방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아직은 찬 바람 속의 매화가 눈을 비빈다. 한 권의 시집으로 후학의 관심을 받는 시인 김수영은 창경궁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 김수영 시인이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었다. 김수영 시인과 더불어 김종삼, 조병화, 박태진 시인, 소설가로 이병주, 장용학, 유주현, 김광식도 지난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작가마다 행사들이 있었다. 유독 눈여겨 보였던 행사가 김수영 시인이다. 김수영 시인은 1959년에 펴낸 <달나라의 장난> 한 권의 시집이 전부다. 그가 남긴 시는 어림, 180여 편, 산문 100여 편, 한편의 단편소설이 전부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특별한 시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김수영 시인 관련 석·박사 논문이 330여 편에 달한다. 180수의 시, 한 권의 시집을 가진 시인에게 학문적으로 접근한 후학이 많다는 것은 어떤 특별함일까?. 그의 시에는 시의 핏줄이 선연하다. 김수영을 읽으면 첨단과 구식이 자유롭게 넘나든다. 김규동 시인은 "시집이 많아서 좋은 시인만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스승 김기림 시인이 시집이 3권이 전부인데 자신의 시집이 배가 더 많은 6권을 냈다며 스승에 부끄럽다 했다. 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새해다. 여행을 즐기던 여행 샘소나이트 가방의 바퀴가 멈추어 선지 3년째다. 들판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잡초들도 여행 중인데, 하등 잡초도 타고난 연약함을 전략적 강함으로 극복, 아주 영리하게 여행을 즐긴다. 그들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척박한 곳에서 홀로 싹을 틔우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환경이 좋다고 무작정 싹을 틔우지 않으며 주도면밀하게 최적의 때를 기다린다. 어떤 때는 해를 거르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환경조건에 맞춰 자신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변신의 귀재다. 나훈아가 노래한 '잡초'도 멀고 먼 나라들을 여행 중이다. 여의도 한강 변에 나가면 '박주가리'가 눈에 띈다. 몇 년 전만 하여도 찾아볼 수 없는 식물이었다. 항구 목포의 근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주가리는 대구, 인천을 거쳐서 서울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박주가리가 한강 변에 도착한 것은 아시아나항공이나 대한항공을 타지 않았다. 그렇다고 KTX라는 열차를 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 여행을 즐기고 한강 변에 자리 잡고 서울에 뿌리를 내려, 즐기고 있을까? 바람이 그들의 전세기비행기로 보인다. 짐승들의 발길과 털에 묻혀 이동하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크리스마스의 상징 빨강 색은 3천 년 동안 어느 색도 능가한 일이 없다"(방식 독일 명장)고 한다. 빨강 색을 가장 우월하게 만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다. 매년 성탄절이면 붉은색의 옷과 붉은 모자를 쓰고 세계의 20억 명의 어린이가 사는 7500만 가구를 하룻밤에 돈다. 굴뚝이나 창문으로 들어가 선물을 놓는다. 이 때문에 마블 코믹 속 대영웅 앤트처럼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가설이 등장해야만 산타가 성탄에 선물 배달을 끝낼 수 있다. 오늘날 택배의 시작은 산타가 선배다. 그렇다면 그들이 입은 빨간색은 어느 학문에 속할까? 현대물리학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빛과 색채에 대한 뉴턴(1816~1894. Sir Charles Thomas Newton. 영국)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빛은 온도가 6천도에 육박하는 천체인 태양으로부터 온다. 그것을 현대물리학에서는 백색 광선이라 한다. 시인이며 색을 가장 많이 연구, 분석한 사람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다. 그는 일생을 뉴턴의 이론과 싸웠다. 아서라. 오늘은 학문적인 이론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언어와 음식은 공통점이 있지 않나 싶다. 언어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 없이 소멸한다. 음식점도 맛의 발길이 끊기면 소멸이다. 지난 11월 29일 LA 한인타운 곱창집에 긴 대기 줄이 만들어졌다. 지난 며칠간 온라인상에서 방탄 소년단(BTS)이 즐겨 찾는 곱창집으로 화제가 된 '아가씨 곱창'이다. 곱창집에선 방탄 소년단 팬들이 '떼창'을 한다. 한글 노랫가락이 곱창집에 퍼진다. 그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SNS상에 퍼져 국내외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의 언어와 음식이 세계의 젊은이에게 전파되는 영상이다. 곱창집의 탁자에 앉기까지 4시간을 기다렸다. 유럽 전역의 젊은이들은 LA, BTS 공연을 보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을 맞기도 했다. ‘떼창’을 위해 한글 공부도 했다. 유네스코 발표에 따르면(2018년) 세계에는 7000여 종의 언어가 있다. 그중에 절반인 3600여 종은 멸종의 위기에 있다. 그중에 570여 종은 가파르게 위기인데 제주 방언도 포함됐다. 환경과 같이 언어의 멸종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소수민족의 언어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의 보유국이다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본지 편집국장/시인) = 성탄절(크리스마스)이 채 한 달도 남짓 않은 올해도 어김없이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거리에 등장하고, 교회당에서는 벌써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 정국 탓인지 예년처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그리고 유흥업소 등에 요란스러운 장식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경제, 기업, 서민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죄와 고통과 절망의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주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찾아오신 날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성탄절은 가장 크고 화려하며 또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축제일이다. 이는 종교적 믿음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탄절을 기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 방방곳곳의 모든 대중매체에서 일제히 이와 관련된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계절 축하행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죄인, 병자,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하시며, 치유하시고, 구원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예수님을 위한 날, 교회를 위한 날이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 러시아)의 생을 보면 순명(順命)을 생각하게 한다. 순명은 어떤 뜻에 따라 주어진 생을 말한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도스토옙스키는 28세 때 반체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총살 직전 목숨을 건진 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9년을 보낸다. 1년의 절반 가까이가 차가운 겨울인 러시아에 태어난 것도 그에게는 순명일 수 있다. 거듭된 파산으로 빚더미에 앉았고 갖가지 병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유배지에서 성경을 수백 번을 읽었다. 그것이 작가로 만든 순명의 한 부분일 수 있지 않나 싶다. 굴곡진 삶에서도 도스토옙스키는 60세라는 수를 누렸다. 당시로 대단히 장수한 편이다. 그가 태어난 난 날은 11월 11일.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Pepero’s Day)다. 1993년 영남지방의 한 여자 중학교에서 시작된 날이라 한다. 몸매를 중요시하는 여중생들이 달력을 보면서 1자가 네 개나 겹쳐진 의미를 부여하며 날씬하고 건강하게 살자는 의미로 만들었다 한다. 재치의 여중생들이다. 비약과 과한 상상력이지만 도스토옙스키가 빼빼로 데
(서울=미래일보) 최창인 시인 = 어느 날 학인(學人)이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희박한 확률로 만났다는 여자를 사랑한 것. 운명의 만남이라고 운명론에 젖어 단박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초기에 서로를 이상화하고 서로의 말과 행동에서 이면의 의미를 찾고 정신과 육체를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냐 자유냐를 놓고 갈등하지만, 끝없이 상대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을 한다. 사랑은 나름에 그 가속력은 빠르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되고 만다. 언어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학인이 비행기 안에서 만난 여인과 같이, 우리는 어느 나라에 태어나든 운명적으로 모국, 나의 언어를 갖게 된다. 독일에 태어나면 독일어 언어를 만나게 된다. 한국에 태어나면 한글이라는 언어가 나의 모국어로 사랑하게 된다. 모국의 언어를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언어에 대하여 존중과 아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멋져지도록 갈고 닦기도 한다. 그러한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 사람들이라 한다. 자국의 언어에 대하여 부단히 연구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벨상문학상 작가 르 클레지오(Le Clezio, Jean-
(서울=미래일보) 강기옥(시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거울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정이나 사회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소시민의 가슴에 파경(破鏡)의 현상은 마음까지 혼란하게 한다. 어려운 경제에 편승하여 거울을 깨려는 자들의 불협화음에 사회가 시끄럽다.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에는 시선은 온통 분당에 집중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정치집단의 속성에 민중은 유리잔을 보듯 위태로워하는데 그런 긴장감 속에서도 내일을 예단하며 영웅담을 즐기는 계층도 있다. 삶이 힘든 서민들은 불안한 정치 상황을 안주 삼아 언성 높이는 줄도 모르면서. 연예인의 연애담과 혼인에 대해서는 아니 댄 굴뚝론을 덧입혀 감탄하던 사람도 그들의 이혼에 대해서는 그럴 줄 알았다며 더 맛깔스러운 화제로 삼는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은 신선한 이야기보다 흥밋거리의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에 비해 정치인들이 서로 등을 돌리는 현상은 씹어도 씹어도 씹히지 않는 쇠고기의 기름 덩어리처럼 추하게 여긴다. 결론도 끝도 없는 이야기, 그래서 차마 목에 넘길 수 없는 껌씹기의 반복이다. 헤어짐은 정든 사람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아쉬움이 내재 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고통 속에서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 마세요. 흔들리는 것은 밝은 내일을 위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7년 전 『살아있는 사람이 꼭 해야 할 101가지』 산문집 내용의 글이다. 꾸준하게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7년째 계속, 하루면 삼십여 명이 책을 구매한다 한다. 나는 작가로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101가지를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못하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선학들은 글 문이 막히고 삶의 해답이 필요하면 산책을 권하기도 한다. 선학의 말씀에 서오릉(西五陵. 조선 시대의 5개 왕릉을 모심) 산책에 나선다. 한 시간 코스로 고즈넉한 산책이다. 가다 보면 아주 초라한 장희빈(1659~1701. 제19대 숙종 후궁. 희대의 국정 농단 자)의 능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장희빈은 표독의 상징이다. 서오릉의 능들은 푸른 잔디 위에 크고 장엄하다. 임금 한 명당 만평에 이르는 능(陵)들이다. 장희빈의 능은 20여 평의 자그마하다. 그늘이 지고 외진 곳에 위치한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장희빈에게 연민이 간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자신을 스스로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일까.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월은 구르몽의 '낙엽' 밟는 소리의 시간이다. 18세기 이후,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나게 ‘낙엽’을 표현한 시인이 구르몽(Remy de Gourmont. 1895~1915)이 아닐까 싶다. 구르몽은 프랑스 캉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졸업 후 구르몽은 국립도서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틈틈이 폭넓은 교양을 쌓는 시간을 만들었다. 1891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국가에 반하는 글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그가 당한 해고는 불화(不和)의 시간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자에게 해고의 시간은 혹독한 법. 시간은 시월. 구르몽은 쓸쓸하고 허한 발걸음으로 공원을 걷는다. 아무런 생각을 만들지 않고 발길은 가을의 낙엽을 밟는다. 걷다가 마주친 길모퉁이 카페에 앉는다. 구르몽은 자신도 모르게 접신이 된다. 시인들은 흔히 이런 시간을 누군가가 나에게 온다고 한다.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영감(靈感)이 찾아온 것이다. 구르몽은 아주 느리게 그리고 호흡을 낮게 소녀가 건네준 커피를 음미한다. 그의 친구와 같은 몽블랑 만년필은 구르몽이 만든 ‘낙엽’ 시를 가장 먼저 읽게 된다. 사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처서(處暑)를 지나면 나무들도 외출을 서둔다. 따가운 햇볕은 주눅이 들고 매미도 목쉰 소리를 내다가 그마저 자지러들고 만다. 기다렸다는 듯 귀뚜라미가 매미를 대신 노래한다. 가을의 행간을 일러준다. 아침 시간의 분주함을 아는 듯 간간이 쉬어가는 소리는 가을, 첫 줄을 밀고 당긴다. 분명, 지난해 구성지게 소리하던 소리꾼의 자제(子弟)가 맞다. 말없이 산방(山房) 떠난 스님처럼 여름옷 갈아입을 시간 찾아주었다. 노래하는 장소도 문간방 창문틀 근처다. 지난해 귀뚜라미가 그러했듯 올해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은둔의 가족이다. 소리에도 마음에 머무는 사유(思惟)가 있다. 길섶에서 만나는 풀꽃의 이야기 모아 남도창(南道唱)을 한다. 이 시간이면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어야 할 시간이다. 아니면 '시간의 향기'를 꺼내어 커피의 시간을 가져볼까. 시몬 드 보브아르(Simone Beauvoir. 1908~1986)는 그랬지. 나는 가을이면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참회록'을 펼친다고 했다. 우리는 안다. 가을은 눈에 닿는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와아, 상혁아 잘했어!"라고 외쳤다. "실패하더라도 상혁아 괜찮아!"라고 외쳤다. 그건 우리가 상혁에게 먼저 해주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의 말을 건넸다.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활짝 웃는 모습은 올림픽이 끝났지만 무궁화 꽃처럼 피어 있다. 웃는 치아가 맑은 우상혁은 매달을 받는 선수보다 더 명랑하다. 4위의 우상혁은 한참을 높이뛰기 아래의 땅을 치며 환호했다. 마치 금메달을 딴 선수와 같다. 그를 보던 나는 1977년의 박완서 소설가의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떠올랐다. 박완서 선생은 버스를 타고가다 고려대학에서 신설동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국제 마라의 행렬을 만났다. 안내양의 만류를 뒤로 하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렸다. 선두에 달리는 선수를 보려는 것이다.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을 통제 중이다. 박완서 작가는 선두를 기다렸지만 선두는 이미 지나고 없었다. 작가는 승자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싶었다. 비참한 꼴찌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순간 푸른 반바지 차람의 마라토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짐작컨대 꼴찌로 보였다. 너무나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