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여성 여러분(And Ladies)" 최근 오스카상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로 여우주연상을 탄 양쯔충(양자경·60, Michelle Yeoh, 楊紫瓊)의 수상소감 첫마디다. 양자경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친숙한 그의 소감을 자세히 살피면 "여성 여러분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시길 바란다. 전 세계 어머니들에게 바친다. 왜냐면 그분들이 바로 영웅이기 때문이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평범한 소감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안한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땅의 어머니는 이름이 없이 살아왔다. 사회적 이름을 가질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이 살아왔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양쯔충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우 양쯔충은 아시아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작품은 7관왕을 달성해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양쯔충은 홍콩에서 데뷔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배우로 중국계 말레이시안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으로 변호사인 아버지를 따라 15세에 영국 왕립무용학교에 입학했고 부전공으로 연기 학사를 취득했다. 우연한 기회에 미스 월드 대회에서 말레이시아
(서울=미래일보) 최창인 시인 = 나오지 않았다. 강신주 철학자(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가 시인과 약속을 한 모양이다. 약속의 시간을 두어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전화한다. 시인의 답변은 오늘은 시내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대답한다. 핑계도 아닌 직설 화법이다. 이런 경우 누구나 화가 치밀어 오르며 상대를 하찮게 보았다고 생각된다. 강신주 철학자는 한참을 생각한다. 시인의 솔직한 대답에 수긍하고 싶었다는 후일 담이다. 그러면서 다시 강신주는 문득 김수영 시인이 떠오른다. 시인은 '어느 날 공원을 나오면서'라는 시에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국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가" 김수영 시인의 소시민적이고 나약함을 정직하게 직면한 시를 만난다. 김수영과 같은 대가의 시인이면 대범 한 척하는 시를 쓸 수도 있다. 김수영 시인은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고 노래한다. 강신주의 정직성에 대한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몇 사람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시를 쓰는 것을 연시(連詩)라 한다. 옛 선비들이 모여 곡주를 나누며 시를 짓는 것에서 유례를 찾기도 한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은 봄이나 가을, 날씨 좋은 날이면 호수에 배를 띄우고 둘러앉아 연시를 짓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의 멋을 아는 절선(節線)의 모습들이 아니겠는가!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면 사군자를 치면서 연시를 짓기도 했다. 즉석에서 장원을 뽑기도 한다. 이와 달리 둘이서 짓는 시를 대시(對詩)라 부른다. 대시는 일본 시인들에게 보편화 되어 있 다. 한국은 대시 보다는 연시를 줄기는 문화다. 대시는 두 사람의 시인이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과 조지훈이 대시를 통해 만든 '나그네'와 '완화삼(玩花三)'이 대표적인 시다. 시간이 흘러도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재미있는 대시의 한 대목이 있다. 권일송 시인이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볼리비아 기수를 보고 시를 만들었다. 볼리비아는 임원, 선수, 기수를 대표하여 단 한 사람만이 외롭게 출전하였다. 그러기에 수많은 입장의 선수 속에 볼리비아 나라는 단 한 명의 기수만으로 외로운 입장이다. 입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친구의 손주는 2월은 왜 28일(윤년에는 29일)까지 밖에 없느냐 물었던 모양이다. 시도반이 백과사전 인양 전화로 다시 묻는다. 달력이 사용되기 시작한 2000년 전에는 2월은 30일로 채워졌었다. 로마의 실세였던 줄리어스 시저는 자기 이름 줄리어스(Julius)를 따서 만든 July(7월)에 2월에서 하루를 떼어내어 첨가했다. 그래서 7월은 30일에서 31일이 되었다. 2월의 달력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저의 조카이며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도 질세라 2월에서 하루를 다시 떼어내어 자기 이름에서 유래된 8월(August)에 첨가하여 31일로 만들었다. 이로써 2월은 두 사람의 실세들의 어이없는 행동으로 2일이 빠져나간 셈이다. 이렇게 7월과 8월은 31일까지 생기게 됐다. 역사는 지나고 보면 사소한 질투와 욕심에 이루어진다. 이들의 옹졸함에 후세의 할아버지들은 손주로부터 질문의 고초를 겪게 된 셈이다. 또 다른 친구는 얼마 전 손주와 교보에 간 모양이다. 수많은 책이 놓여있는데 간혹(드물게) 비닐로 싸져 있는 책들이 있다. 호기심 많은 손주가 물었다. 친구는 서점에서 해결, 하지 않고 시도반에
(서울=미래일보) 최창인 시인 = '망초 꽃 웃고 있는 우물가/ 등물해 주는/ 그대 그대를 생각했지/ 초저녁 모깃불 연기 속/ 잘게 부서지는 웃음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빛/ 수박 속에 가득 떨어지면/ 추억의 옛 생각 새롭게 솟아나고/ 토담 길 지나면 달빛 쏟아지는 하얀 여름밤/ 나 그대를 생각하지 음 오/ 나 그대를 생각하지 음 오/ 나 그대를 생각하지' 망초꽃이 주제가 된 시골의 여름밤 풍경을 노래한 최창일 작시의 '하얀 여름' 가곡 전문이다. 가곡의 노랫말에 망초는 신선초(神仙草)와 같이 우아한 잡초로 표현된다. 문제는 이 잡초가 미국에서는 조용하게 ‘인간의 뒤통수 치기’의 미움받는 식물로 평가되고 있다. 망초꽃은 북아메리카가 고향이다. 학명은 코니자 카나덴시스(Conyza canadensis)다. 망초가 잡초가 된 시기는 1990년대다. 한국에 입국하여 여행을 시작한 것은 철도의 침목이 들어오며 철길 부근에 놀며, 여행하며 전국으로 식구를 늘리게 된다. 망초가 즐겨 서식하는 곳은 GMO 작물 밭이다. 우리가 알듯이 GMO는 우리의 순수 농산물에 유전자를 변형시킨 작물이다. 가령 물렁한 토마토를 유통에서도 딴딴하게 유지 보관이 쉽도록 변형시키는 것이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신은 촌락을 만들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는 얼굴을 갖고 촌락은 영혼을 갖는다"는 격언은 도시는 인위성을 말한다. 촌락은 자연성을 말한다. 성경에 사람이 사는 첫 배경이 에덴동산이다. 그곳에는 과일나무가 무성하게 있었고 네 개의 강줄기인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강, 유브라데 강이었다. 이렇듯 인간이 시작하는 처음 풍경은 촌락에서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이 많아진다. 자연 도시와 시장이 형성된다. 도시(都市)는 시(市)장을 뜻하고 있다. 도시라는 말의 도(都)는 왕이 사는 왕궁을 뜻한다. 왕궁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정치를 하는 도시로 일컬어진다. 문학에서 사용되는 ‘도회풍’이라는 말이 있다. 의미를 따지면 세련되고 우아하다. 예의 바르다는 뜻이다. 복수형 예절 바름이라는 의미는 긍정적 의미가 들어있다.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촌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뜻은 시골과 관련된 말이다. 긍정의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회풍'과 '촌스럽다' 의미에는 불공평이 들어있어 보인다. 촌락을 뜻하는 '촌스럽다' 역사와 탄생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무리 찾아도 근원은 없다. 시와 소설, 또는 영화와 같은 표현의 부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터키의 야자수 나무 아래 풍경. 50대의 장년들이 대화 중이다. 가이드 생활을 하는 한국인 교포 청년 철주를 보며 어디에 가느냐 묻는다. 철주는 "남방 옷을 사려 시장에 갑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철주 청년에게 잠시 빈 의자에 앉으라 권한다. 남방은 무슨 색을 살 거냐 묻는다. 철주는 시장에서 살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 한다. 동네 어른들은 각기 의견을 말한다. "철주는 붉은 계열의 옷이 맞을 거야" 다른 어른은 "녹색계열이 어울릴 텐데". 또 다른 어른은 "무슨 소리야, 철주는 얼굴이 갸름하고 하얀 피부색이니 흰색계열의 남방이 어울린다고." 다섯 분의 어른들은 다른 의견을 말한다. 30분이 지나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철주는 시간이 많지 않아 일어선다. 그리곤 곧장 시장으로 간다. 어른들은 철주가 일어서는 것에 특별하게 관심이 없다. 그들의 토론은 계속된다. 시장으로 간 철주는 평소 좋아하는 남색 남방을 샀다. 점심시간이 이르지만, 시장통에서 간단한 햄버거를 먹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의 입구에는 동네 어른들이 여전히 앉아 있다. 빈자리에 앉았다. 어른들은 몇 시간째 철주의 남방 색을 결정하지 못하고 토론 중이었다. 이 이야기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시가 무엇일까요. 시도반(詩道伴, 시 공부자)들과 대화 중, 질문을 받거나 질문을 한 적이 많다. 아무개 시도반은 행(行)과 행이 걸어가는 것이다. 연(連)과 연으로 연결된 언어의 건축이다. 다른 아무개 시도반은 아이들이 블록으로 집을 만드는 것과 같이 빨강, 노랑, 형형 색의 블록을 쌓는 것이다. 왼쪽에 앉은 시도반은 하얀 산을 표현하는 알프스 몽블랑의 정상에 눈이 쌓이듯 하얀 집이라 한다. 재치 넘치는 재미있는 표현들이다. 시에는 그 안에 무엇인가 의미를 숨겨 넣어서 보석과 같은 집을 지은 것이 분명하다. 요들송의 스위스를 시인들과 여행을 한다. 산속에 옹기종기 지어놓은 집들이 평화롭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조용함만이 사는 마을처럼 보인다. 조용함이 산길의 마을을 걸어 다닌다. 차창 밖을 보던 얼굴 하얀 시도반이, 시인이 만든 마을 같아요. 마을이 시를 쓰고 있어요. 일행은 낯선 마을에 저녁을 가방에서 푼다. 전등불이 켜져 있는 방안이 조명으로 은은하게 들여다보인다. 모르는 도시에 모르는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은 인간의 백합꽃을 피우는 것처럼 평온하다. 이를 두고 밤이 아름다운 집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나 싶다. 시는 낯선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한 사냥꾼이 훈련된 매를 데리고 숲속에서 사냥하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그는 꿩을 발견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고 나서 매를 불러 날개가 다친 꿩을 쫓게 했다. 매는 한참 후에 돌아왔다. 매의 발에는 꿩이 들려있지 않았다. 화가 난 사냥꾼이 물었다. "꿩은 어디 있느냐?" 매는 사냥꾼의 어깨에 엎드려 매 특유의 소리를 냈다. "최선을 다해 찾아갔지만, 꿩을 잡지 못했습니다." 한편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꿩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반긴 꿩의 가족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날개를 다친 데다 하늘에서 쫓아오는 매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니?" 그러자 꿩이 대답했다. "매는 정말 열심히 따라왔어요. 하지만 나는 죽기 살기로 날았거든요!" 무엇을 하여도 어떤 일을 하든지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한다면 우리 안에 감춰진 잠재력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계(限界)에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을 쏟는다면 결과의 답은 나와 있다. 인간의 뇌에는 최대 5억 권의 책에 담긴 내용(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고 뇌 과학자는 말한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이다. 그렇지만 인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십이 초 동안 시 한 편을 다 읽는 동안 지구상에서는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탄생 된다. 반대로 십이 초 동안 30명의 사람과 5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상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사람은 포유동물이다. 크기는 1m에서 2m 사이로 다양하며 몸무게는 30kg에서 1백kg 사이다. 임신의 시기는 9개월, 식성은 잡식성이다. 개체 수는 꾸준히 증가하며 70억 이상으로 추산한다. 개미는 곤충이다. 크기는 0.01cm에서 3cm로 다양하다. 무게는 0.001mg에서 1mg 사이다. 산란은 정자의 저장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식성은 잡식성이다. 개체의 수는 수십억의 10억 배 이상으로 추산한다. 소설 <개미> 작가로 이름을 날린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흥미로운 분석에 의한 자료다. 작가들은 대중이 생각하지 못한 통계를 생성하므로 작품의 맛을 살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독특한 작가로 어릴 적부터 개미를 방안에 기르며 연구, 관찰하였다. 그리고 결과물로 <개미> 소설을 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밖의 나라에서도 주목받는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허드슨 강가의 이른 아침이다. 산책에서 마주친 백인 여자 하얀 어깨 위에 '愛(애)' 자 문신이 눈길이 간다. 백인 여자는 중국 글씨인 '애' 자를 어깨에 왜 새겼을까? 시도반은 허드슨 강가의 30년 전 백인 여자의 어깨 문신에 의문을 갖는다. 학인은 '애'에 대하여 말한다. '애'는 질문이 많다. '애'는 사랑하는 것이다. 말이 많은 '애', 말수가 적은 '애', 시를 제법 쓰는 문예반 '애'. 우리는 '애' 속에 살고 있다. 재미있는 '애' 말을 한다. 다시 궁금하다. 미모의 백인 여자는 동양의 남자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애' 자를 새긴 30대의 여자는 왜 혼자서 이른 아침 산책을 할까?. 애인은 동양에 있으며 혼자서 고향 뉴욕집에 온 것일까?. 추리는 적절한 답을 못 낸다. 유추, 분명한 것은 동양의 남자와 관련 문신일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 홍콩, 대만 등의 남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아니다. 여자는 언어(言語)를 사랑하므로 한자어인 '애'라는 글자에 애착 있었을 것이다. 선명하게 보이는 어깨 위에 멋으로 새겼을 수도 있다. 언어에 '애(愛)'를 할 수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상상의 나래일 뿐이다.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운명(運命)론이란 있을까요?" 가을날 산책 중 황금찬 시인의 질문이다. 선생과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돌아본다. 은행나무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긴 수령의 어른 나무다. 첫 번째는 성균관 대학의 은행나무다. 선생은 쌍문동에 살았다. 은행나무가 있는 방학동에는 큰아들이 토속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도반은 선생과 점심을 하면 연산군의 묘 근처 은행나무 아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길 나누었다. "시도반 선생, 이 은행나무가 세 번의 시련이 있었어요"라며 은행나무의 운명론에 관하여 서사(敍事) 한다. 이 나무는 경복궁 증축 때 징목(徵木) 대상의 나무로 베어내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대원군에 수차례 간청하였다. 대원군은 마을의 여론에 고개를 끄덕이며 은행나무를 징목에서 제외토록 했다. 황금찬 선생은 대원군의 결심이 가상하다 한다. 대원군은 종로구에 있는 석파정을 보고 욕심을 부린 자다. 석파정의 주인은 영의정 지낸 김흥근(金興根)이었다. 대원군은 삼계동정사(三契同精舍 당시 명칭)를 보고 욕심이 났다. 흥정을 넣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꼼수를 부려 대원군은 아들 고종을 행차케 하여 하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종묘, 돌담길 따라가면 순라(巡邏) 길이 나온다. 비원과 연결되는 골목길이다. 조선 시대에 순라군이 궁궐을 지키던 길이다. 초가을 햇빛이 먼 길 떠나는 오동나무 그림자를 잠시나마 쉬게 하고 있다. 길모퉁이 카페는 연인들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사이에 엄마와 초등학생이 주스를 마신다.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는 떨어진 오동잎을 주워, 주스 잔 받침으로 놓는다.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며 오동잎 잔 받침에 미소 짓는다. '오동은 고목이 되어 갈수록 제 중심의 구멍을 기른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지나는 바람 한 줄기 거문고 소리를 들리리니 거문고 소리가 아닌들 또 어떠랴. 고뇌의 피리 새라도 한 마리 세 들어 새끼 칠 수 있다면 텅 빈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복효근 시인은 오동나무의 '고목'을 노래한다. 오동나무는 보랏빛 꽃잎과 넉넉한 품의 잎사귀를 가진 나무다. 오동나무는 중국의 원산인 참오동나무와 울릉도에 고향을 둔 오동나무가 있다. 통꽃 안쪽이 짙은 보랏빛 선이면 참오동나무다. 선이 없는 것이 울릉도 오동나무다. 주변에 만나는
(서울=미래일보) 장건섭 기자 = 생각 놀이 하나 해볼까 한다. 생각이란 호도처럼 생긴 뇌 속에 깊이깊이 감추어진 비밀의 센서다. 그 센서 속의 비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도 시시로 바뀌기 때문에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출연했던 박은빈 배우의 말을 듣고 그 '생각'이라는 것이 '아하 이것이로구나' 정리되는 듯싶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출연하기까지 많은 고민 했어요. 역할의 어려움을 떠나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 고민하였지요. 과연 연기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미디어를 통한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것은 현실이다. 박은빈 배우는 '자폐아' 연기를 통한 올바른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필요했다.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배려심이 배우를 망설이게도 했다. 결정의 기간이 1년이 걸렸다. 작품을 마주하는 배우의 진중함에 시(詩)도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 놀이 한번 해보자는 시도반이 가벼이 여겨졌다. 박은빈은 '무조건적'인 배우의 길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현재 시점에서 한 우물을 판 것 같지만, 저는 꼭 이걸 해야겠다든
(서울=미래일보) 최창일 시인 = "범방(犯房)에서 온 것 같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지압원을 찾은 학인에게 엄 원장 말이다. 학인은 범방의 뜻을 찾는다.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일을 뜻한다. 좀 더 점잖게 이르면 궁중(宮中) 용어쯤으로 알아두자. 시각장애인 엄 원장이 범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선생님! OO를 하다가 허리에 무리가 생겼어요?"라고 말했다면 듣는 사람은 무안하기 이를 데가 없을 수도 있다. 경박한 화법으로 들릴 수 있다. 말이란 듣기에 따라 묵형(墨刑)이 될 수도 있다. 묵형이란 죄인의 살갗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조선 시대 형벌을 이른다. 한국의 욕설은 주로 형벌과 관련이 적지 않다. 조선 시대에 죄인을 처벌하던 것들은 중국의 명나라의 대명률에 의한 것들이 많다. 지금의 우리 법률은 독일 헌법에 근거, 기초하지만, 그때는(조선 시대) 그랬다. 예전엔 '제기랄' 이라는 정도도 큰 욕에 속했다. '제기랄'은 '제기다'라는 동사에서 연유한다. '소장(訴狀)이나 원서(願書)에 제사(題辭)를 쓰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제기랄'은 형사 고발을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어이없을 때 사용하는 '젠장'도 순박한 시절엔 욕으로 받았다. "젠장, 꼭 그